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우할매 Apr 21. 2023

타인의 삶에 절하고 싶었던 날

온삶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엄마

거무튀튀한 얼굴빛이지만 선량한 눈빛을 한 여자노인이 열린 문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그거 등록하려고요.

즉시 알아차리고 상담을 시작했다. 신분증을 확인하니 나보다 겨우 서너 달 위, 이제 60대 중반을 막 지나고 있다. 거의 동갑과 다름없다. 하지만 화장하지 않은 그의 얼굴은 착하게 살아온 흔적과 함께 살아온 날들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취지를 잘 알고 오신 분이라 의향서 서식을 간단하게 읽어드리며 서명을 받고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면 물어보시라고 했다.

뜻밖의 말씀이, 시신기증도 하고 싶으시단다. 자신의 몸이 연구에 쓰인다면 좋겠다고! 나는 그의 생각이 너무나 장하고 훌륭해서 아는 만큼 설명드렸다. 장기 기증과 시신 기증의 차이를 그저 아는 만큼 대화 형식으로 나누다 보니, 아들들이 너무 착해서 그건 반대할 거 같다고 좀 더 생각해 보신단다.

그래 그렇지.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랐으니 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큰아들의 쌍둥이 아들을 5살까지 키웠다. 어느 날 어깨가 무너지는 거 같아 119 불러 응급실 갔고 모든 검사를 다했는데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물리치료를 받으며 살 만해졌단다. 큰아들이, 엄마가 자기 아이들 키우다 이렇게 아프게 되었다며 너무나 안타까워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 40대까지 건축공사장에서 남편과 함께 40킬로 벽돌 등짐을 졌다고 했다.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등짐 노동으로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한 여자사람의 가난한 날들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노동하는 아빠 엄마 밑에서 자라난 두 아들이 그리도 착하다니 그 엄마의 그 자식들이다. 모범을 보일 일이 따로 없음을 이 엄마가 보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까르마 하나 정복한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