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젊은 아빠와 꽃처럼 예뻤던 엄마가 있었어. 이제 막 경찰관이 되었던 스무 살 남짓 신랑과 열여섯 살 소녀티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신부. 시절은 일본이 패망을 한 해 앞둔 1944년 대동아전쟁 말기였어.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물자나 사람 모두를 싹쓸이로 수탈했다는데, 남자는 징용으로 여자는 정신대로 끌어가는 데 혈안이 되었더래. 외할머니는 당신 딸 세 자매 중 가장 예쁘고 착한 둘째 딸을 서둘러 혼인을 시켰어. 많이 배운 사람들이야 그 혼란한 와중에도 자신과 집안을 지킬 수 있었겠지만 우리 외할머니는 기괴한 풍문에 그저 괜찮은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을 보내는 게 최선이었을 시절이야.
엄마 또한 신산한 삶을 살며 자식들을 굶주리지 않게 애쓰는 홀어머니를 돕는다고 혼인 자리가 나서자마자 시집을 갔더래. 이렇게 급하게 결혼을 했어도 이즈음 몇 해는 엄마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거 같아. 이후로 엄마의 운명은 말 그대로 질곡의 삶이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첫아기였고 두 해 뒤에 동생 해미가 태어났어. 바깥세상이야 엄청난 혼란의 시대였을지라도 든든한 신랑의 보호를 받으며 아직 어린 엄마는 몇 해 동안은 행복했을 거 같아.
아 아니다. 내가 젖먹이였을 때 큰 불행이 있었네. 고모인지 누군가 갓난아기인 나를 업고 우물가에서 일하다 아기를 추스른다는 게 그만 포대기에서 빠져나온 내가 고모를 타고 앞으로 고꾸라져 떨어진 거야. 그 일로 크게 다친 나는 영구적으로 목이 짧아진 불구가 되었지. 아 불행과 행복이 함께한 시절이었나? ㅠㅠ 아니면 불행의 시작이었나?
내가 일곱 살 동생이 다섯 살일 때에 큰 전쟁이 터졌어. 몇 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우리 집이 아버지의 입대로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어. 두 해쯤 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의 전사통보를 받은 우리 엄마 ㅠㅠ 엄마는 그때 겨우 스물네 살, 꽃 같은 전쟁미망인 ㅠ
어느 날 손위시누가 권했대. 그리 멀지 않은 도시에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넉넉한 선비영감님이 있는데 그리 재혼하라고.
그리 재혼해 가서 우리 해원이 병원도 데려가고 공부도 시키라고. 해미는 당신이 키우겠다고.
보퉁이 하나 든 엄마 손을 잡고 나는 그렇게 새아버지에게로 왔어. 새로운 기대를 갖고 왔지만 그건 새로운 신산한 삶의 시작이었지.
듣던 바와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