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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희 Apr 02. 2022

에밀리 디킨슨 - 고요한 열정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 

(미국 시인, 1830~1886)


에밀리는 생의 절반 이상을 은둔하면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시를 창작했다. 그렇게 1,800편에 가까운 시를 남겼다. 그중 생전에 단 몇 편만 가명으로 발표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수많은 여성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가슴 떨리게 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언어와 문학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성실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 재학 중에 건강이 나빠져 학업을 중단하게 되는데, 20대 중반쯤부터 세상과 소통을 끊고 은둔하다시피 집 안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흰옷만 입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에밀리는 시 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을 사랑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노래를 곧잘 불렀다. 물론 독서를 가장 사랑했지만. 19세기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과 영국의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과 브론테 자매의 시를 즐겨 읽었다.



에밀리는 목소리가 부드럽고, 차림새가 간결하면서 자태는 아름다웠다고 한다. 아이 같이 순수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성품이었고, 언변은 재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있을 때면 안절부절못했고 내향성도 점점 커졌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교육방식이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에밀리는 차츰 집 주변을 벗어나지 않다가, 결국엔 집 밖으로 발을 내딛지 않게 되고, 마지막엔 자신의 방 안에만 머물게 된다. 무수히 많은 편지로 세상 사람과 소통할 뿐 대면(對面)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력은 육체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누비고 다녔으며, 놀라운 통찰력과 관찰력은 1,800편(현재까지 알려진 시는 1,775편)에 가까운 시에 오롯이 담긴다. 



에밀리 디킨슨은 사랑, 자연, 죽음, 이별, 신성함을 주제로 시를 썼다. 미국의 남북 전쟁(1861~1865) 당시 가까운 사람을 전쟁에서 여럿 잃는데, 이를 계기로 에밀리는 죽음에 관해 사색하게 된다. 이렇게 그녀 시의 중요한 주제 하나가 탄생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를 시 쓰기에 더욱 몰두하게 하여, 이 시기에 상당한 다작을 한다. 시에서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판사 오티스 로드(Otis Lord)를 향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에밀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도 남겼다. 내향적 성격과 심리적 이유로 은둔을 택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과의 소통을 간절하게 갈망하기도 했던 것이다. 편지에도 그녀의 시와 그리 다르지 않은 문체가 담겼다.  



그녀는 55세에 신장 질환으로 사망한다. 에밀리 사후에 여동생 비니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1,800편에 가까운 시를 발견한다. 주위에서 유품을 태워 없애라고 권했지만, 다행히 비니는 에밀리가 손글씨로 남긴 시를 단 하나도 태우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의 언니 카산드라가 동생 사후에 제인 오스틴이 자필로 남긴 편지를 상당수 태워 없앤 사실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에밀리의 시는 대부분 그녀의 손글씨 그대로 몇몇 대학 도서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에밀리의 동생은 마벨 토트 부인을 통해 1893년부터 총 3권의 시집을 차례로 발표한다. 출간되자마자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3권의 초판본은 에밀리 디킨슨이 쓴 형태 그대로의 시가 아니라, 편집자가 맞춤법 규칙에 맞게 교정해서 펴낸 것이라 다소 아쉽다. 1985년에 토마스 존슨이 에밀리 디킨슨이 손글씨로 쓴 시의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살린 시 전집을 출간한다. 



고전 시의 형식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현대 시를 개척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고 탐구의 대상이 된다. 

특히 실비아 플라스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에밀리 디킨슨의 일생을 그린 영화 “A Quiet Passion”(2016)이 개봉되었고, TV 시리즈 Dickinson(2019)에서는 허구적인 상상력을 더해서 그녀의 삶을 색다르게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고요한 열정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스무 편을 실었다.



언제나 사랑했다는


언제나 사랑했다는

증거를 가져올게요

사랑하기 전에는 

살아있지 않았어요 — 충분히 —

언제나 사랑하리라는 맹세를

당신에게 바칠게요

사랑은 — 삶이고 —

삶은 불멸이에요 —

이 말을 — 당신은 의심하나요 — 그대여

그러면 나는

보여드릴 게 없어요

시련말고는 —



'희망'은 날개가 달린 것


'희망'은 날개가 달린 것 —

영혼의 가지 끝에 걸터앉아 —

가사 없는 곡조로 노래를 시작하여 —

멈추지 않지 — 절대로 — 

거친 바람에도 한없이 감미롭게 —

들려오고 —

쓰라린 폭풍이 휘몰아쳐 —

작은 새를 어쩌지 못하게 하여도 

그만큼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며 —

차디찬 땅에서도 들었네 —

낯설기 그지없는 바다에서도 —

하나 — 곤경에 빠져도 — 결코,

희망은 빵부스러기 하나 청하지 않았네 — 나에게.





✐ [독자의 리뷰]


가볍게 손에 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혹은 침대에 누워서, 햇빛 받을 겸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봐야지 하고 가져나가기 좋은 시집. 다정하고 사려 깊으며 때로는 강렬한 문구들이 가득하다. 당시의 시대극 영화와 소설, 드라마들이 생각날 때 펼쳐보며 그 영상들을 떠올리기도 좋은 시집이다. 외국어가 원어인 작품을 번역본으로 읽으면 유독 소설보다도 시일 때 내가 읽은 감정이 원어로 읽는 것과 같은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꽤 부드럽게 읽혀서 그런 의문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덕분에 새로운 여성 시인들을 알게 되는 점도 정말 좋았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시를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19세기 문학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시집 


제인 오스틴 초상화로 디자인한 책표지도 인상적이고,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저자들의 소개도 꼼꼼하게 담겨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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