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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빛과 순간을 붓질하다

by 박영희


그날, 파리의 거리는 어쩐지 어둡고 침울했다. 어떤 기억을 삼키기라도 하듯, 회색빛 안개는 서늘한 도시를 무겁게 뒤덮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안개 속에서 빛을 보았고, 사라졌을 순간을 그렸다. 지베르니의 교회에 모인 사람들 가운에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는 빛을 훔친 화가였지.”

모네의 관을 덮은 검은 천을 벗겨내고 꽃무늬 천을 대신 덮으면서 클레망소가 말했다.

“모네에게 검은색은 없어!”



빛과 순간을 붓질하다

[클로드 모네의 삶과 사람들]



모네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주변 어른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용돈을 벌 정도였다. 사업을 하던 모네의 아버지는 아들이 예술에 관심을 두는 것이 내내 못마땅했다.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바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네의 어머니는 아들이 예술가로 성장하도록 지지했다. 하지만 모네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따뜻하게 품어주던 어머니가 떠나고 모네는 이모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외젠 부댕, 스승이자 친구

1858년, 18세


모네는 열여덟 살에 자신의 운명을 바꾼 화가, 외젠 부댕을 처음 만났다. 모네가 인상파 화가로 성장하도록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평생지기 친구가 된다. 부댕은 캐리커처를 그리던 모네를 바닷가로 데리고 나갔다. 그곳에서 밝은 하늘과 물 위에 반짝이는 빛을 캔버스에 옮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클로드, 자네 캐리커처는 재미있지만, 진짜 예술이 아니야. 자네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리게나. 바다와 빛과 푸른 하늘을 제대로 보고 그려보게.”


이 말을 모네는 가슴속에 품었다. 이 시절에 노르망디의 바닷가에서 부댕이 알려준 야외 회화(plein air)라는 개념은 훗날 인상파 미술의 핵심이 되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부댕은 1874년에 열린 첫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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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스위스

1860년, 20세

[모네, 피사로, 세잔, 기요맹]


모네는 1859년 4월에 파리에 도착해서 2년간 미술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당시 젊은 화가들이 입학하기를 바라던 에콜 데 보자르가 아니라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던 아카데미 스위스를 선택했다. 그가 1860년에 들어간 아카데미 스위스(Académie Suisse)는 정식 학교는 아니었다. 가난한 젊은 화가들이 누드화를 실컷 그릴 수 있던 열린 공간이었다. 수업료가 따로 있었다기보다는 십시일반으로 얼마간의 회비를 내서 모델에 지급할 비용을 마련하는 정도였다. 스무 살 청년 모네는 이곳에서 피사로를 처음 만났고, 기요맹과 세잔도 만났다. 이때 만난 젊은 친구들은 나중에 선배 화가였던 마네를 중심으로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까지 합류해서 카페 게부와(CaféGuerbois)를 아지트 삼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샤를 글레르 화실

1862년, 22세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


미술사를 바꿔 놓은 운명적인 만남은 샤를 글레르 화실에서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경외하던 르누아르가 1861년에 가장 먼저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화실에 들어갔다. 군대에서 갓 제대하고 스물두 살이 된 모네는 그다음 해에 이 화실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오귀스트 르누아르, 프레데릭 바지유, 알프레드 시슬레를 만났다. 모네는 글레르의 전통적인 기법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을 그리고 싶던 모네는 의기투합한 친구 르누아르, 시슬레와 함께 캔버스와 이젤을 매고 야외로 그림 여행을 자주 다녔다. 피사로도 곧 이 외출에 합류했다. 센 강변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모네와 친구들은 빛과 공기의 상호작용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생생한 풍경을 즉흥적으로 캔버스에 옮기는 화법을 개발해 나갔다.




친구이자 후원자 프레데릭 바지유

1863,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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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를 전공하고 한 때 화가였다. 지금은 봄날에 출판사를 꾸리며 언어, 디자인, 고전문학, 미술, 에세이를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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