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몰랐던 당찬 포부였음을
마지막으로 브런치 글을 올린 지 약 8개월이 지났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미 그때에도 출시된 지 꽤 오래된 첫 프로덕트의 제작과정 이야기를 반도 담지 않은 채 그렇게 긴 브런치 공백기를 맞이했다. 그땐, 앞으로 그토록 힘든 시간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간단히 말하자면, 8개월 동안 무수히 바빴다. 뒤돌아보면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지만, 바빴다.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썼을 때, 8개월 차 기획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16개월 차 기획자가 되어있었다. 8개월 동안 2개, 아니 3개의 스쿼드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작은 프로젝트를 포함하면 족히 10개 넘는 프로젝트는 진행한 것 같다. (프로젝트 수가 무조건적으로 많은 게 좋은 것 같지도 않지만)
작년 말부터 회사는 BM을 위한 총력을 기울였다. 유저는 꽤 많은 편이지만 그 유저로부터 수익을 얻기 위해선 차원이 다른 전략과 기획, 개발이 필요했다. 서비스 기획으로 입사한 나를 포함해 모든 기획자들은 임원분들과 신사업 개발에 뛰어들었고, 사실 지금까지도 서비스 기획자 겸 PM 겸 PO를 모두 도맡아서 일을 하고 있다. 작년 초에 여유롭게 일기를 개발하던 나의 최소 3,4배가량의 일이 주어졌고 당연히 브런치는 생각은 났지만 엄두는 못 낼 정도로 바빴다.
일이 많아졌고, 책임도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기획자로서 비례하게 성장했는가?라고 묻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이 점이 가장 사회초년생으로서 나를 가장 힘들게,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이전 프로젝트가 채 마무리되기 전에 다른 프로젝트를 론칭하고 그저 눈앞에 있는 일들을 처리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점점 생각들은 얕아졌고 한 프로덕트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그리는 것은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으려 했다.
이러다 보니 일하는 경력이 짧은 편이지만 번아웃 또한 겪었다. 회사에서 있는 시간이 평균 11시간에서 12시간이 되는 건 기본이었고, 몇 주는 주 52시간을 넘겨 출퇴근 기록을 수정해야만 했다. 물론 회사에서 이런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회사 사정 상 일하는 직원으로서 그런 것들을 이해해야 했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회사에 있을 이유도, 있어야 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것은 번아웃도 매우 바쁘면 (치유가 아니라) 그냥 넘어가진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점점 집중력은 줄어들었고 내가 만들어내는 기획서나 프로덕트의 퀄리티도 예전만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빠르게 검증하고 실패를 겪으며 길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은 쳐내는 작업을 했기에 엄청 후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획자로서 사용자가 진심으로 느끼는 문제점에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 머릿속 아이디어로 제시한 적이 극히 드물어서, 그 점이 제일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않았던 것은 운동. 오히려 목숨을 걸고 지켰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8,9시에 마쳐도 운동을 가서 12시에 잠이 들어도 나를 위해서 운동은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잘 버텼던 것이라 믿는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운동의 진가를 깨달았고, 그 깨달음 하나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갑자기 8개월 만에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음을 조금 다르게 먹었다. 어쩌면 결심을 한 것이라 표현할 수 도 있겠다. 객관적으로 힘든 시간이지만 그럴수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느꼈다. 또한 내가 느낀 것들을 건강하게 승화시키는 '글쓰기'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일 할 곳을 구할 때에도 도움이 무조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비스 기획자로서 회사 프로덕트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불특정다수의 사용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추천해주고 싶고, 나 또한 한 명의 사용자로서 다양한 서비스를 써보며 느낀 것을 기록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다시금 닦아나가고 싶다.
워라밸, 일과 일 외적인 시간을 분리하여 그 둘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일. 지난 8개월 동안은 실패했다. 앞으로도 꽤 많이 실패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겐 워라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되었다. 회사라는 나를 둘러싼 환경도 많은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동안 느낀 것은 내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는지 또한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내가 일을 처리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부족함을 느낀 지난 8개월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8개월 만에 쓰는 이글이 그 많은 시도 중 성공적인 변화이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끝으로, 모든 직장인들은 칼퇴하는 날이 늘어나길 바라며...
(야근은 정말,,, 최악입니다 ㅠ)
다음 주는 마무리하지 못한 첫 번째 프로덕트 '일기'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아참, 그리고 다양한 기획자분들과 IT기업 종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저라는 기획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주저 마시고 댓글 달아주세요! (저도 네트워킹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튼 이야기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