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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Dec 12. 2023

《호락호락 당하지 않으려면》

불행을 닮지는 않을거야

행복은 사람을 가리는 것처럼 보여도,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물불 가리지 않고 가만히 다가와 뒤통수를 치는 게 불행이다. (정말 뵈는 게 없는 것 같다) 불행은 보통 예고 없이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오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억울하고 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소수의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탓에 불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불행은 다수의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감이 없지 않아 공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이것을 공평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불행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온다. ‘불치병, 명예퇴직, 파산, 배신, 사기’ 등으로 말이다. 이런 것들에 한 번 시달리기 시작하면, 세상을 그만 살고 싶어진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그러면 그 누구도 믿지 않고 마음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살게 한다. 가만 보면 행복은 저금리로 찔끔 불어나는 것 같고, 불행은 고금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같다. 왜 불행에만 복리이자가 붙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여태껏 마음에 아로새겨진 불행이 하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숟가락도 없이 결혼하셨다. 결혼식도 둘째인 나를 뱃속에 갖고 나서야 겨우 올리셨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배는 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하여, 온 국민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IMF가 찾아왔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20년 넘게 뼈가 빠지도록 일하면서 겨우 집 하나를 장만했는데, 하필 그때 IMF가 터졌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융자 이자가 끝을 모르고 하늘까지 치솟았다. 아버지는 일감이 없어 쉬는 날이 많으셨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이곳저곳에서 일한 덕분에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벌어오는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에서, 3분의 2가 은행 이자로 빠져나갔다. 남은 돈으로 3명이 버텨야 했다. (감사하게도 형은 군대에 있었다) 그때가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학교도 교통비만 가지고 시계추처럼 ‘학교-집, 집-학교’만 오갔다. 1,200원 하는 학교 구내식당의 백반은 그림의 떡이었다. 집에 와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니, 얼굴에 버짐이라는 것까지 피었다. 그때만큼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피부로 느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방학 때마다 거리와 노점에서 물건을 팔면서 학비를 벌었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빚지지 않고 학교를 졸업한 건, 셀프 칭찬을 해 주고 싶은 업적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이후로 10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선 보증이 잘못된 바람에 집이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피해를 봤지만, 두 분이 영혼을 갈아 넣어 장만한 집은 지킬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간 철근은 아버지 어머니의 뼈였고, 시멘트는 살과 영혼이나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내 눈에 비친 집은 그랬다. 지금도 두 분은 생애 처음으로 마련한 집에서 살고 계신다.

이런 위기를 겪으면, 좀처럼 나를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게 쉽지 않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건만, 자신을 탓하는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행이라는 자객을 상대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다. 바로 불행을 채찍으로 만들어서 나를 내리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억울하고 분하고 죽겠는데, 그걸로 나를 더 못살게 굴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망가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불행은 공들여 쌓은 우리네 삶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다. 어디 그뿐이던가? 나라는 고귀한 존재를 실컷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생각까지 주입한다. 사실 불행으로 더 형편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만큼, 더 불행한 것도 없다. 호락호락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적으로 삼지 말고, 나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말고, 나를 보듬고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만 토닥이고 쓰다듬을 게 아니다. 생애 최악의 날을 통과하는 나를 향해서도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불행과 맞설 수 있다.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기엔, 나라는 존재는 귀하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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