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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Apr 13. 2021

Violin Concerto in G minor, RV

비발디, 무의식, 그리고 연결.


며칠 전부터 저 협주곡의 특정 마디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 같다. 분명 최근에 들은 것도 아닌, 아주 먼 옛날 즐겨 듣거나 혹은 언젠가 잠시 귓가를 스쳤던 멜로디가 갑자기 귀에 하루 종일 아른거리는 날. 분명 우리 기억력, 혹은 뇌의 관한 어떤 작용에 의한 현상이지 않을까? 뇌 과학자가 옆에 있다면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처음에는 이 곡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굉장히 자주 들었던 곡인 것 같은데.. 혹은 내가 연주했던..


이 생각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갑자기 한 순간 내가 초등학교 때 몇 년간 열심히 바이올린을 배웠던 것이 생각났고, 그때 매일 수없이 연습하던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에서 나왔던 곡이었음을 직감했다. 유튜브에서 스즈키 교본에 있는 모든 노래를 다 검색하고 클래식 광이 된 것처럼 하루 종일 듣고 찾은 끝에 드디어 내 귀에 울리던 마디를 찾았다.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왜 하필 그 마디가 그렇게도 열심히 내 귓가를 간지럽혔을까. 반복되는 부분도 아닌,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그 찰나의 마디가.

기억을 돌이켜 보니, 내가 정말 열심히도 연습했던 부분이었다. 내게 있어 완성된 그 마디는 내가 아는 바이올린 곡 중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그만큼 몇 시간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연습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이었다. 바이올린 선생님 외에 그 마디를 잘 연주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마디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자,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마디였음을,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부끄럽게도 하고 가슴 뛰게도 했던 그 마디가 그렇게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 있었다.


기억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내가 잊으려 해도, 혹은 그냥 자연히 잊고 있어도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오는 것. 그걸 내가 어떻게 막을까.


퇴사하고, 두 달의 휴식기를 가진 후 다시 학교에 돌아와 새 출발을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졸업을 앞두고 벌써부터 서운하거나 뒤숭숭한 느낌은 사실 없다. 어딘가 적막한 느낌의 학교 생활은 아무래도 코로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다행히 내가 있는 지역은 상황이 많이 나쁜 편이 아니라 그런지 거의 대면 수업 위주라 캠퍼스도 북적이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혼자 하는 졸업전시는 확실히 외롭다. 팀원 없이 각자가 진행하는 구조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전히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제약을 경험하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골반 부위와 목, 팔의 통증은 처음보다는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결국 그 비싼 도수치료도 나를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요즘이다.


“어째서 하루의 대부분을 서서, 혹은 누워서 작업을 하는데도, 8시간 9시간씩 앉아있는 사람들보다 이렇게 아파야 하지?”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는 하루에 최소 30분, 한 시간 이상 재활 운동과 근육을 푸는 마사지를 하지 않으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아직도 종종 잊어버린다. 누가 봐도 건강했고, 그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살았던 시간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일 거다. 통증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순간에야 새파랗게 깨닫는다. 그래.. 나 아직 환자였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몸을 막 쓰면 아플 수밖에 없는.


작업을 하려면 오른손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 2-3시간만 써도 팔이 너무 아파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마음껏 그릴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할 때가 참 많다.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 놓인 사람들도 분명 많을 텐데, 배부른 투정일 거다.


사실 지금 시기에 글 쓰는 건 사치일지 모르겠다. 졸업 과제에 집중해도 모자랄 상황에.

하지만 이상하게 과제에 엄청 몰입해서 작업한 날에는 더 글을 쓰고 싶다. 그만큼 내가 다양한 영감을 받고 무수한 생각을 했다는 반증이겠다.

바쁘다는 이유로, 작업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닌 그 순간, 찰나의 내 마음들이기에. 그렇기에 글을 손에서 놓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막 피어 나오는 새싹과 같은, 더 자라서 어떤 열매를 맺어갈지 모를 그 생각의 봉오리들을 그냥 묻어두기엔 너무 아깝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하고 일기를 쓰지 않고 잠들면, 다음날 혹은 며칠 뒤에 내가 흘러 보냈던 그 생각이 무섭게도 다시 떠오른다.

분명 그 생각을 어디엔가 담아두고 싶었던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그 생각들은 결국 잊혀지겠지만, 15년이 지나 내게 불쑥 찾아온 비발디 협주곡처럼 또 다른 시간 속에서 나를 찾아올지 모르겠다.


나만 볼 수 있는 노트에 혼자 일기를 쓰는 것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다수가 아니더라도 단 한 두 사람에게라도 내 글을 공개하는 것은 내겐 전혀 다르다. 읽는이가 공감할  있는 코드를 찾고 싶어 하고, 내 글을 통해서 조금의 영감, 혹은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그것 때문에 더 글쓰기를 주저할 때가 있었다. 한때 추구했던 완벽주의의 습관이다. 지금의 내 생각, 필터링되지 않은 투박한 문장들이 한없이 부족해 보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쓰기로 했다. 이상하게 묵혀두는 것보다는 부족할지라도 누구에게라도 이 글이 닿는 것이 내게도 더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이지 않는 희미한 연결은 분명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


가끔씩이라도, 앞으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자 끄적거린 작업일기들, 순간순간 내 오감과 생각을 자극한 무수한 영감들을 여기에도 적어보기로 다짐했다. 나는 외롭게 이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이 연결을 통해 그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기를-

아니, 이 연결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외로운 달리기를 즐기게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길의 끝에, 내게 다시 찾아온 비발디 협주곡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잊혀지지 않을 작품을 연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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