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속한 어떤 시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회색빛 시멘트 건물 안에 이런 보물같은 공간이 있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마을회관 책” 이라고 적힌 나무 가판대 뒤에
활짝 열린 문으로 한 발 들어서자 천장까지 닿을듯 웅장한 책장이 먼저 눈에 띕니다.
그 아래에는 클래식의 역사를 비롯한 각족 음악 관련 책과 미니 바이올린 모형, 옛날 타자기도 보입니다.
마치 베토벤의 서가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반대편에 놓인 멋진 피아노, 그리고 그 앞에 놓여진 큰 테이블 위에는 차와 다과가 있습니다
큰 공간을 다양한 구성으로 분리해 놓은 책방 지기님의 감각이 돋보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디트리히의 방’이었습니다. 존경하는 본회퍼 목사님의 방이라니요.
그분의 삶의 한 자락을 담아내고 싶었던 걸까요.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러시아의 초현실주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쉬라는 사람의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화가의 그림은 처음 봤을 때는 조금 거부감이 들 정도로 색채가 강하고 독특했습니다
그날 함께 본 11점의 그림에는 모두 비슷한 요소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요소들을 통해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듯 했습니다.
김선주 시인은 이를 짧게는 ‘시간이라는 한계 속 인간 욕망의 덧없음”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무심코 위를 바라보니 벽에 걸린 독특한 시계가 눈에 띄었습니다.
분침이 마치 시계의 테두리와 하나가 된 듯 이어진,
그동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기한 디자인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시간 속에 제한된 인간 존재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공교롭게도 제 눈은 그 시계에 갇힌듯 했지요.
알고보니 바늘이 아닌 원 전체가 움직이는 시계였다고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바늘이 우리 같고
그를 둘러싼 원은 자전하는 지구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그 멋진 시계는 어떤 소음도 없는듯 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도 모를만큼 고요히, 그러나 빠르게 흘러가 있었습니다.
누가 오든, 오지 않든, 크게 연연하지 않고
늘 그랬듯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그 시계처럼,
이 서점 ‘마을회관’ 역시 멋드러진 공간이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거창하고 화려하게 이 존재를 알리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힌 “지극히 개인적인 서점”이라는 문구처럼요.
책방지기님과 공간, 그리고 그 스웨덴 시계는 어딘가 잘 어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