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rry Nov 01. 2020

엄마의 가방

엄마의 가방은 늘 무거웠다.
노트북과 책으로 가득 차 돌덩이가 된 배낭도 모자라,
때로는 양손에 책 서너 권이 더 들은 에코백을 들고 있기도 했다.

누가 보면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가, 고3 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엄마의 가방은 늘 묵직한 수험생 가방 같았다.

아, 심지어 가족끼리 여름에 제주도를 갔던 그 순간에도 엄마는 배낭에 노트북과 책 몇권을 챙겨가기도 했다.


엄마는 글을 썼다.
내가 어렸기에 그 글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인 줄 알았는데,
그때보다 머리가 더 커진 지금도 여전히 어려웠다.

아도르노, 하이데거, 니체, 한나 아렌트, 히토 슈타이얼,
낯설거나 낯설지 않은 그 이름들은 엄마의 글에 자주 등장했다.

엄마는 회화, 혹은 다양한 유형의 예술을 비평하는 글을 썼다.
‘비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던 시절

내게는 그 글들이 별 의미 없어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책을 자주 샀다.
어렸을 때는 나와 동생을 위한 책에 돈을 더 많이 들였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가 읽을 책을 사는 데에 들이는 돈은 비슷해 보였다.
한창 용돈이 궁한 학생 때는 그게 미련한 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집안의 수많은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도 모자라,
한쪽 구석에, 피아노 위에, 선반에 가로로 쌓여 있는 저 책들을 대체 어떻게 할거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책장에 놓인 책들에 때때로 눈길이 갔다.

그 책등에는 ‘sustainability’, ‘생태예술’, ‘페미니즘’ 등의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그때는 그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책을 꺼내 들어 스르륵 넘겨보았다.
그것들 중 어떤 책은 다행히 나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과 같은 것들.
‘라캉과 지젝’이라는 책은 아직 펼치기가 무서워 조금 미뤄두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미술 전시장에 자주 다녔다.

엄마와 함께 다닌 전시장은 내 친구들이 좋아할법한,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낙서, 장난질이라고 욕을 먹기도 하는 '현대미술'을 엄마는 좋아했다.

때로는 유명하지 않은 화가의 작은 갤러리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의 슬픈 눈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엄마는 꽤 오래전부터 ‘월간미술’ 잡지를 구독해왔다.
그곳에 자주 등장한 세계 곳곳의 아트 비엔날레가 어느 날에는 너무 궁금해져서,

내 발로 직접 베니스 비엔날레에 직접 가보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엄마는 미술 쪽에서 일해”라고 말하자
다들 “그럼 화가야? 멋지다!”라는 말을 했다.

문득 한번도 본적 없는 엄마의 그림실력이 궁금해졌다.

엄마는 때로는 글이 빽빽한 노트 한 구석에 깨작깨작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엔 엄마가 얇은 펜으로 장미꽃 한 송이를 그렸다.
붉은 꽃잎, 얇고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장미꽃 한 송이였다.
내 생각보다 엄마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 같았다.

이내 그 노트는 다시 엄마의 글로 가득 채워졌다.
엄마는 가끔 어떤 잡지나 신문에 자신의 글이 실리면 수줍게 그 글을 내게 보여주며 읽어보기를 권했다.


다행히 예전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더 재미있게 읽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 글이 너무 어려워. 다는 이해를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여전히 엄마의 서가에는 버리지 못한 책들로 가득하다.
마치 나의 또 다른 동생들 같다.

어렸을 때 키다리 책장들 아래 작은 패브릭 소파에서 엄마의 책들을 열심히 넘겨보던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시간이 흘러, 나는 예술과 맞닿아 있는 ‘디자인’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산업 디자인’이라는 그 정교하고 딱딱한 그 이름에 걸맞게, 클라이언트라는 존재로 인해 결정지어지는

그 일은 내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숨 막히게 했다.

그럴 때면 잠시 숨을 돌리러 엄마의 서재에 온다.

어렸을 때만큼 웅장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오랜 책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새벽 1시 반,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그 서가에서 다시 나를 찾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