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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Nov 01. 2020

넌 기자가 되면 힘들거야

아빠는 내게 말했다.

“넌 기자가 되면 힘들거야”

나도 아빠처럼 기자가 될래"라는 내 말에 대한 아빠의 대답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기자에 대한 내 재능을 나무라기보다는,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내게 안겨줄 어떤 힘듦을,
아빠가 11년간 몸담았던 00일보사의 사회부 기자라는, 쉽지 않은 그 자리에서 고뇌하고 겪었던 시련을 

나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그러한 아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난 학보사 기자가 되보고 싶다는 결심을 버리지 않았고 고민 끝에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1년은 내겐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명확히 전달되어야 할 사실을 쓴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마음이 약했고,

냉철한 이성보다는 감성의 글을 더 쓰고 싶어했고,

심각한 이야기들보다는 일상의 자잘한 재미들을 발견하기를 더 좋아했다.


그렇기에 학교의 어두운 면들을 낱낱이 찾아내는 일은, 

그런 내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 글에는 내가 없었다.
그 글을 쓰는 ‘나’도 없는 것 같았다.
1년의 의무기간을 마치고 도망치듯 학보사를 나왔다.

그리고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무언가를 쓰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때때로, 이상하게도 그 행위가 그리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쓰는 행위"보다는, 기사를 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고, 예정된 대화보다 더 풍성한 대화가 오갈 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우리가 조금은 가까워져있을 때의 그 순간을 좋아했다. 그것이 나의 글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어느날, 서랍에 오랫동안 묵혀있던 펜을 꺼냈다.

그 펜으로 나의 이야기부터 다시 써보기로 결심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축, 마음을 울린 영화와 책, 일상에서 얻은 영감들.
그 속에는 내가 있었다.
무언가를 향한 나의 시선, 생각, 열정, 고민이 녹아졌다.

그리고 그 시선을 다시 나의 곁, 혹은 조금 먼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안녕할까?
그들의 삶이 문득 궁금해졌다.

학보사 기자 시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준비했던 철저하고도 정교한 질문지는 없었지만
이제 마음속에 늘 품고다니는 질문지가 생겼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그 질문지를 조심스레 꺼내어 만나는 이들에게 건네보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서투르기 그지없는 나의 질문지에 그들은 정성껏 답해주었다.

그것들은 때때로 나의 편견을 깨기도 했고
나에게 어떤 용기를 주기도 했고
나에게 조심스레 연대의 손길을 건네기도 했다.

그들의 대답들을 나는 다시 노트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유일한, 그 소중한 이야기들이 증발하기 전에 재빨리 적어내려갔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순간에 나는 다시 기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그런 나의 글을 더 좋아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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