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4의 일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랜만에 적어보는 기록은 조금 특별하고, 새롭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늘 그렇듯 값 없이 받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나이기에
내가 경험한 어제와 오늘 저녁의 감정과 체험을 한 움큼이라도 잡아보려고 애쓰는, 그런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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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내 몸은 지난 몇 주간 육의 양식에 미쳐있었다.
고작 한 달, 결코 길지 않은 기간이었음에도 그 사이 어둠에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내주었던 것이다.
“옳지, 한 걸음만 더 오면 돼”라고 어둠이 내게 손짓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가까스로 발을 뺐다.
고개를 살짝, 아주 살짝 돌리자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내 등을 비추고 있는 빛의 존재가 그제야 느껴졌다.
온몸을 가까스로 돌려 그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어둠을 향한 내 등은 마치 칼날에 막 베어져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물이 스며들듯 쓰라렸다.
그 아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아니,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오롯이 겪어야 하는 그 아픔은 또 다른 의미에서는 축복이었다.
결국, 나는 또 그렇게 진리를 마주했다.
진리이자 나와 같이 숨 쉬는 존재인 그가 아주 오래전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이 고통을 먼저 온몸으로 겪었고 또 지금도 나와 함께 겪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빛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도
어느 순간 힘이 풀려 어둠에 나를 내어주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이제는 정말 잘라내야 했던 것인지,
스스로 정말 두 눈으로 “보이는” 상처를 만들어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호박을 자르다가 벌어진, 그 누구도 아닌 내 실수로 생긴 상처였지만
그런 내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주관하시는 그는 나를 위해 그 상처를 허용하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이 드는 순간이었다.
보기 좋게(?) 칼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 호박을 자르던 잠깐의 순간에도 어둠에 나를 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쓰라림과 동시에 솟구쳐 나오는 피를 보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았다.
지문을 비집고 나오는 피처럼 누구에게도 다 터놓지 못한 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다 털어놓았다.
해결책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들어만 주길 바라는 그런 그런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쏟아냈다.
멈추지 않는 눈물처럼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나보다 더 아프고 아팠을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길어진 40여 분간의 통화가 끝날 무렵,
무섭게 뿜어져 나오던 피는 어느새 멎어있었다.
마음의 출혈도 조금, 아니 생각보다 많이 멎은 듯했다.
엄마와 통화를 하는 내내 최근 읽고 있는 c.s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에서 본 문장,
“사랑은 단순한 친절보다 더 단호하며 탁월하다.” 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랑은 단호하다.
그리고 탁월하다.
그렇기에 분명 친절과 다르다.
그렇기에 당장은 나를 깊이 파내는 듯 너무나 쓰라리고 매서운 그 상처가,
결국 날 향한 당신의 사랑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깊게 파인 상처도,
언젠가는 아문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상처가, 놀랍게도 붕대가 되어 내 마음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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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그날 밤, 나는 철저하게 외식(hypocrisy) 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벗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평안이 내게 찾아왔다.
그렇게 반나절은 잘 견디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일과가 끝나고 홀로 남겨진 시간이 찾아오자 금방 지난 몇 일간의 비틀거리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이 재빠르게 찾아왔다.
혼자의 공간에서 그에게 집중하기엔, 나는 여전히 너무 불안했다.
분명히 또 육의 양식으로 나를 허겁지겁 채우며 공허함으로 가득한 하루로 마무리할게 뻔했다.
더 이상은 안돼.
이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다시 어둠 속으로 침잠하려는 영혼을 겨우겨우 붙잡아 당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다면, 외부 환경이라도 나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다들 제 잘난 맛에, 더욱더 광적으로 자신에게 집중된 삶에 흠뻑 빠져 살아가는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당신의 제자로, 자녀로 살아가라는 거에요-“
그렇게 당신에게 물으며, 속으로 어린아이 마냥 울부짖고 발을 동동 구르며
겨우겨우 당신에게로 나아갔다.
모두가 “나 자신”에 미쳐있는 그 세상, 나도 하루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그 세상을 옆에 두고,
값 없이 허락된 영혼의 양식을 구했다.
에베소서 6:12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24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변함없이”
그의 사랑이 그렇다.
그렇기에 도저히 내 손으로는 너무 놓기 힘들었던 그 어둠을 단숨에 끊어내게 하시고,
그럼에도 여전히 어둠의 잔흔이 온몸 구석구석 배어 있는 나를 끌어안고 대신 울고 아파하신다.
절대 내 몸을 억지로 돌리지 않고,
나 스스로 빛으로 한 걸음 나아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신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에,
변하지 않는 것 딱 한 가지.
당신을 선택할 결단을 내릴 용기가 다행히도 아직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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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 참을 수 있으며 사랑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대상과 결코 화해할 수 없다. … 그러므로 그는 당신의 죄와 결코 화해하실 수 없다.
죄 자체는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과는 화해하실 수 있다. 당신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머스 트러헌, <<명상의 시대>>
남들이 보기엔 지극히 사소한,
“뭐 저런 거 하나까지도 다 주님의 은혜래” 할만한 것도, 당신의 세밀한 인도하심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심할 자격조차 내겐 없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처럼,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들보다 훨씬 선명한 당신의 존재가 오늘도 나를 지키고 있음을,
그것만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지는 사실이라는 것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