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홈즈 Nov 21. 2024

나도 진짜배기 춤을 추고 싶다.

춤이란 무엇인가? 6

나이 들어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에 빠져 들 수 있다는 것은 참 복 받은 일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문득 춤이 내 게로 왔다. 춤은 이제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앞으로도 춤은 나와 함께 할 것이 분명하다. 이게 다 나의 춤 스승인 최보결 선생을 만난 덕이다. 나는 보결춤을 통해 내 속에 든 원형의 나를 만나게 되었고 더 깊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무용을 전공하거나 체계적으로 춤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추는 춤은 그저 꿈틀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결춤은 내게 이 몸짓 또한 하나의 멋진 춤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내면의 느낌을 그대로 꺼내어 놓으세요” 

보결춤을 처음 배우러 갔을 때 이 말 한마디가 내 가슴에 들었다. 원래 몸속에 들어 있던 것을  꺼내 놓는 행위가 춤이라니. 이 거다 싶었다. 내면의 나를 온전히 꺼내 놓는 행위가 바로 춤이라는 말이 깊이 울렸다. 풍물판을 얼쩡거리며 들었던 속에 든 흥을 꺼내 놓고 푸지게 노는 것이 제대로 노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맥 상통하는 이치였다. 


내면의 들어 있는 춤이란 무엇인가? 원형의 나이다. 본질의 춤은 거짓이 있을 수 없다. 내면에 들어 있는 원형의 나를 꺼내 진심을 전하니 감동이 전해진다. 그 행위가 곧 본질의 나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세상과 나의 관계, 세상과의 소통,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행위는 자기 충족에 불과하다. 그저 자기 멋내기에 그치는 일이다. 이게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까지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자기 성찰, 자기 수양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그 시간이 바로 춤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춤의 숙성 시간이다.


무엇이든 숙성의 시간을 가져야 진짜배기 맛을 낼 수가 있다. 재료를 버무리기만 해서는 제대로인 맛을 내지 못한다. 김치는 배추와 무와 같은 원재료에 소금, 액젓, 고춧가루 등 양념들을 버무려 만드는 음식이다. 버무리자마자 생김치의 맛을 즐길 수도 있지만 진짜배기 맛은 숙성의 시간 동안 발효균의 도움으로 잘 익은 김치다. 술도 마찬가지다. 쌀이나 보리 등 원재료와 누룩을 버무려 놓자마자 바로 술을 걸러낼 수는 없다. 재료를 섞어 술을 빚었다면 효모균의 활동할 시간을 줘야 한다. 숙성의 시간이다. 술 익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듣는다. 술항아리 속은 익어가는 동안 뽀글거리다가 부글부글 끓기도 하고 가끔 버럭버럭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시간이다. 자기 수양과 자기 성찰은 고통과 번뇌가 따르는 이치 와도 같다.


예술도 술이다. 술이 익어야 제 맛을 내듯이 모든 예술도 익어야 제 맛을 낸다. 그러니 예술인 춤도 익어야 제대로인 춤이다. 춤을 배워 춤기술을 익히고 안무를 짜 춤을 춘다고 해서 다 춤이 아니다. 춤추는 이와 세상 그리고 나와 춤에 대한 성찰 없이 추는 춤은 설익은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깊은 성찰이 들지 않은 춤은 흉내내기 껍데기에 불과하다. 돌아가신 공옥진 선생은 병신춤이라는 춤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선생이 추는 병신춤에는 선생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선생의 가치관이 묻어 있었다. 감동은 이성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선생의 몸짓으로 내면이 전해졌던 것이다.


내 춤은 지금 숙성 중이다. 내 춤은 지금 보결 선생님이 가르쳐준 춤이라는 재료에 내 속에 든 세상을 바라보는 내 가치를 버무려 익어가는 중이다. 나도 잘 익은 진짜배기 춤을 추고 싶다. 진짜배기 춤이란 무엇인가? 손끝과 발끝 그리고 온몸 구석구석까지 내 속의 나를 꺼내 놓는 춤이 진짜배기 춤이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나,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같이 느끼면서 추는 춤이 진짜배기 춤이다. 지금은 비록 어설픈 초보 춤꾼이지만 내 삶이 들어 있고,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그런 춤을 추고 싶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발가락 끝은 꿈틀 움직여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갇짜니 선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