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호텔 앤 레스토랑> 기고문
사람들의 뇌리에 브랜드를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를 설정하고 이를 소비자와의 다양한 접점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때나 기존의 브랜드를 리브랜딩 할 때나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다. 브랜드 정체성의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스타일 및 성격을 설정한 후 이를 감각적인 요소를 통해 표현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디자인하는 것이 브랜딩의 주요 절차 중 하나다. 브랜딩에서 감각적 요소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포함한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브랜드 토크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을 감각적 요소에 잘 녹여내 표현한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리브랜딩 사례를 다룬다.
로고 변천사
맥도날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골든 아치(Golden Arch)’다. 맥도날드의 브랜드 마크인 골든 아치는 세계에서 가장 인식률이 높은 것으로 손꼽힌다. 영화 ‘파운더(The Founder)’는 맥도날드의 브랜드의 성장과 이 골든 아치의 탄생의 스토리를 잘 풀어냈다. 1940년, 모리스와 리처드 맥도날드 형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체성이 모호한 ‘에어돔(The Airdome)’이라는 레스토랑의 이름을 ‘McDonald’s Famous Barbeque’로 변경했다.
이후 미국에서 햄버거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햄버거에 집중한 네이밍인 ‘McDonald’s famous Hamburgers’로 다시 변경했고, 1953년에는 ‘McDonald’s’로 브랜드명을 단순화했다. 맥도날드가 그 유명한 골든 아치를 로고로 사용하게 된 것은 1961년부터다. 이는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 사업가이자 패스트푸드 산업의 선구자였던 레이 크록(Ray Kroc)이 맥도날드를 인수하면서 진행한 리브랜딩의 결과물이다.
골든 아치는 건축가 스탠리 메스튼(Stanley Meston)이 1953년 디자인한 맥도날드의 2번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외관의 아치 형태 구조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 맥도날드의 로고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색상과 디자인에 약간의 변형이 있었지만, 60년간 골든 아치를 고수하고 있다(그림 2).
브랜드 정체성: 맥도날드와 함께하는 즐거운 순간
모든 브랜딩의 시작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핵심 가치를 추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맥도날드의 리브랜딩은 소비자 니즈와 맥도날드 자체 브랜드 성장 계획에 대한 심층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2016년 말부터 시작된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맥도날드가 늘 중요시해 온 가치인 ‘즐거움(Fun)’을 주는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전면에 내세워 ‘맥도날드와 함께 하는 즐거운 순간’을 리브랜딩의 핵심 콘셉트로 설정했다.
감각적 요소로 표현한 브랜드 정체성
맥도날드의 브랜드 핵심(에센스)을 소비자와의 다양한 접점에서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키워드는 ‘즐거움(Delight)’, ‘신선함’, ‘장난기 많은(Playful)’이다. 맥도날드의 리브랜딩을 담당한 에이전시인 ‘펄피셔(Pearlfisher)’는 브랜드 에센스를 패키징과 그래픽 요소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통일성 있는 시각적 프레임워크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물은 깔끔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짓게 하는 귀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러스트를 적용한 패키징이다(그림 3).
제품 상단에 제품명이 적혀 있고, 재품의 특징 및 사용된 재료를 군더더기 없는 일러스트로 표현해 포장만으로도 직관적으로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있다. 감자튀김 포장은 겉으로 봐서는 기존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감자튀김이 하나씩 줄어들면 포장지 안쪽의 감자튀김 그림이 드러난다. 온라인 및 전광판 광고의 6~7초짜리 동영상에는 메뉴의 특징을 담은 일러스트에 따라 치즈가 흘러내리는 모습(쿼터 파운더),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피시버거), 신선한 재료가 겹겹이 쌓이고 맛있게 베어 먹는 모습(빅맥), 핑크빛 물결과 통통 튀는 알갱이들(맥플러리) 등으로 표현해 재미를 더한다.
필자가 있는 미국 보스턴의 맥도날드에서는 2021년 하반기부터 이 새로운 패키징을 선보였다. 직접 경험한 실물 패키징은 재생지를 활용해서인지 인터넷에서 본 상큼하면서도 장난기 많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맥도날드의 리브랜딩 전략을 잘 표현한 모습이었다. 이 결과물은 2021년 ‘펜타워즈(Pentawards_ 패키징 디자인 대회)’에서 동상을, ‘트랜스폼 어워즈(Transform Awards_북미 지역 브랜드를 대상으로 하는 리브랜딩 및 브랜드 개발 매거진에서 진행하는 대회)’의 패키징 부문에서 금상을, 브랜드 전략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로고 변천사
1953년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로 시작한 버거킹의 최초 로고는 떠오르는 태양을 표현한 픽토리얼 마크에 워드마크를 병기한 형태였다(그림 4). 이 로고는 패스트푸드를 직관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1년 만에 변경됐다. 버거킹의 2세대 로고는 브랜드명을 워드마크로 표현한 것으로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1957년에 새로 선보인 3세대 로고는 브랜드명의 의미를 그대로 담은 ‘버거의 왕’과 패스트푸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픽토리얼 마크와 브랜드명과 슬로건을 병기한 엠블럼을 조합한 것이다. 다소 복잡하지만, 12년간 이 마크를 활용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포지셔닝을 확실히 했다.
1969년에 버거킹을 대표하는 햄버거 번 사이에 브랜드명을 워드마크로 표현한 아이코닉 엠블럼이 탄생했다. 이는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번의 색상과 워드마크의 모양과 로고에 차이를 주며, 50년이 넘도록 지속적으로 버거킹의 심벌로 사용 중이다. 1999년에 탄생한 6세대 로고는 기존 로고의 크기와 비율을 변경한 것으로 빛나는 형태의 금빛 번과 엠블럼을 둘러싼 파란색의 C자 형태를 더해 청량함과 활동감, 스피드와 전문성을 더했다는 평을 받으며 좋은 로고 디자인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2021년에 새롭게 출시한 로고는 1960년대와 94년에 사용하던 로고 형태에서 폭을 줄여 균형 있게 리디자인한 형태로 호불호가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로고와 똑같은 형태로 창의성이 결여됐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레트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마크가 마음에 든다는 평도 있다. 필자는 이번 버거킹 로고는 혁신성에서는 부족하지만, 버거킹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타임리스한 디자인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싶다. 혁신성을 위해 너무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택할 경우, 소비자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의 괴리로 인해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정체성: 최상의 품질, 맛(육즙), 건강한 음식
버거킹은 창업 초반부터 ‘패스트푸드 = 정크 푸드’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100% 순소고기 패티를 직화 방식으로 구워 조리해 최상의 품질을 제공한다’는 메시지로 차별화했다. 이번 리브랜딩에서도 주목한 것은 ‘최상의 품질’, ‘맛(육즙)’, ‘건강한 음식’이다.
버거킹은 2020년에, 광고 회사 오길비(Ogilvy)와 함께 ‘몰디 와퍼(Moldy Whopper)’ 캠페인 진행했다. 이는 버거킹의 새로운 로고와 감각적 요소가 대중에게 공개되기 1년 전에 먼저 선보인 것이다. 캠페인은 35일 동안 와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으로 주목받았다. 영상 속 와퍼에 초록 곰팡이가 생기는 과정을 보여주며 말미에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은 아름다움”이라는 문구로 끝이 난다. 또한 와퍼에 곰팡이가 핀 모습의 스틸컷과 “00일째 와퍼”와 함께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은 아름다움” 문구를 넣은 대형 야외광고판이 건물 벽면과 버스 정거장 등에 부착돼 있다. 혐오스러워서 자칫하면 와퍼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수 있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었지만, 이로 인해 14%의 매출 증가와 4000만 달러의 EMV(Earned Media Value)를 생성했으며,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88% 증가했다. 오히려 버거킹은 몸에 좋지 않은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함께 정크 푸드가 아닌 건강한 음식이라고 포지셔닝하는 과감한 시도였다.
https://www.ogilvy.com/work/moldy-whopper
감각적 요소로 표현한 브랜드 정체성
버거킹의 리브랜딩을 맡은 디자인 에이전시인 JKR(Jones Knowles Ritchie)은 버거킹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감, 심플함, 재미의 키워드를 선택했고 이를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했다(그림 5). 메인 컬러는 햄버거를 구성하는 식재료에서 영감을 받아 설정했다. 토마토의 빨강, 햄버거 번의 주황, 패티의 갈색, 양파의 흰색, 양상추와 피클의 초록, 머스타드의 노랑. 버거킹만을 위한 시그니처 폰트인 ‘플레임 산스(Flame-Sans)’도 탄생했다. 이는 흘러내리는 육즙과 케첩을 상기시키는 대담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서체다.
메뉴에 사용된 재료의 특징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맥도날드와는 달리, 버거킹은 메뉴의 감촉과 맛을 시그니처 폰트를 활용해 표현한 패키징을 선보였다. ‘멜티 쥬시(Melty Juicy)’, ‘텐더 크리스피(Tender Crispy)’, ‘골든 크런치(Golden Crunch)’, ‘테이스티 에기(Tasty Eggy)’, ‘치지 베이커니(Cheesy Bacony)’ 등 이름만 들어도 어떤 맛인지 상상이 된다. 버거킹의 패키징은 맥도날드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한다. ‘몰디 와퍼’ 캠페인 이후, 선보인 옥외 광고판 역시 심플함과 재미를 고루 갖춘 모습이다. 점점 커지는 M자의 나열과 함께 오른쪽 끝에 버거킹의 로고와 JUICY만을 표시한 광고판은 별다른 문구 없이 버거킹 제품의 풍부한 맛과 육즙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버거킹의 리브랜딩은 패키징과 광고 외에도 유니폼, 간판, 매장 인테리어 및 외관의 모습까지 리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직원 유니폼의 기본 색상은 잘 익은 직화구이 소고기 패티의 컬러인 갈색이다. 버거킹 로고가 수 놓인 카라 티셔츠와 점퍼인 갈색 유니폼은 카라 부분에 빨강, 주황, 흰색의 3 색선으로 포인트를 줬다. 그 외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빨강, 흰색, 노랑의 티셔츠에는 버거, 감자튀김 등과 버거킹의 슬로건이 프린트된 모습이다. 매장 인테리어도 버거킹의 주도색을 활용해 어두운 갈색의 우드 재질과 깨끗한 흰색의 조화로 안락함과 따듯함을 더한다.
버거킹의 리브랜딩은 성공적인 브랜딩으로 꼽히며 브랜딩 및 디자인 관련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먼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_ 미국의 비즈니스 매거진)>에서 ‘2021년 최고의 브랜딩 캠페인’상을 수상했으며, 칸 라이언즈(Cannes Lions_ 국제광고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D&AD(Design and Advertising_ 디자인과 광고 분야의 국제 대회)에서 브랜딩 활동, 홍보, 판촉물 및 옥외 광고, 미디어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새로운 브랜드의 론칭보다 어려운 것이 성공적인 리브랜딩이다. 그 이유는 이미 소비자의 인식 속에 남아 있는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선보인 결과물에 호불호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기존의 것과 비교하며 갑론을박의 의견들이 나오는 것이 불가피하다. 리브랜딩의 성공은 몇 개의 단일 요소만 갖고 평가할 수 없다. 브랜드가 의도한 방향을 소비자와의 모든 접점에서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입체적이면서도 일관성 있게 표현했는지 다각도로 평가해야 한다.
이번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리브랜딩의 사례는 패스트푸드 산업에서의 탑인 두 브랜드가 설정한 브랜드 핵심과 그것을 다양한 접점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 보여준다. 브랜드의 핵심과 그 핵심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설정한 키워드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감각적 요소가 도출됐다. 맥도날드는 깔끔하고 귀여운 일러 스트로 메뉴의 재료를 표현한 패키징을, 버거킹은 시그니처 폰트로 메뉴의 촉감과 맛, 재료를 표현한 레트로 느낌의 패키징이 인상적이다. 이번 리브랜딩으로 인한 소비자가 인식하는 두 브랜드의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바뀔 지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