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영화를 좋아한다. 이기팝의 노래가 흐르는 흑백 클립을 보고 솔직히 기대감이 생겼다. 누가 요즘같은 세상에 흑백 영화를,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끼얹어서 만들까 싶었다. 고려인 출신의 빅토르 초이가 1980년대 당시 러시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뮤지션이고 한국인인 유태오 배우가 빅토르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고는 하지만, 분명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거나 오래 상영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행여나 영화를 놓칠까, 부랴부랴 조조상영을 보러갔다.
러시아어는 체코어와 비슷한 단어들이 많아, 원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반가웠다. '레토' 역시 체코에서도 여름이라는 뜻이다. 이런 제목에 어울리게 영화에는 젊은 뮤지션 청년들이 등장한다. 영화속에 흐르는 동명의 노래 속 '레토'라고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발음이 산뜻했다.
영화 초반에 사용된, 일부 유럽의 국가들의 영화에서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한국에 개봉된 영화로서는 신선한 기법들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당시 러시아에서 엄중해야 했던 공연에서 흥분한 관객들이 뛰어다닌다던지, 버스 안에서의 기묘한 경험이라던지 어떤 있을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갑자기 한 사람이 등장해 그 사건을 종결시키며 '이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설명하는 연출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 사람은 주인공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누군가의 상상속 인물이거나 영화의 바깥에 존재하며, 사건을 설명하기도 하고 처음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나중에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 일종의 진행자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조금 더 보다보면 저 사람의 역할이 정확히 드러나며 감독의 의도가 분명해질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사람은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혼란스러웠다. 위에서 언급했던, 초반에 나오던 의문의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아, 그가 제공하던 힌트는 사라져버렸고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와의 관계에서 고민하던 마이크(로만 빌리크)의 슬픔은 어느 새 이 영화를 장악해 버렸다. 나는 마이크가 슬퍼하다 자살할까봐 영화 후반부 내내 너무 두려웠다. 영화를 보기 전과 상영 초반엔 빅토르 초이가 영화의 주인공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관객으로서 그의 심리상태를 좆아가는 것보다는 마이크나 나타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느낌과 인상을 남기는 영화를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일까? 물론 영화의 제목이 '빅토르'인 것은 아니지만 의문이 생겼다. 게다가 영화 초반과 후반의, 마치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은 분위기 차이는? 어째서 초반에는 감독만의 독특한 색깔이 잘 드러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수수께끼의 답은 때려치우고 [원스] 러시아판 같은 느낌으로 가는가? 이 음악과 불륜과 절망과 애매한 결말의 조합은 무엇이란말인가? 혼란스러웠다. 정치적 상황때문에 영화를 숨어서 만들기라도 한 것이라면 모를까. 지금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라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와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영화 촬영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로부터 감금당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촬영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다면, 이후에 아무리 남은 배우와 스텝들이 힘을 모아 열심히 제작해냈다 하여도, 배우들의 연기지도나 후반작업이 감독의 의도대로 되었을리 없다. 결국 편집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영화는 촬영을 마치고 배급되어 우리나라에 개봉된 것 자체가 기적적으로 보인다.
일단 감독은 한 뮤지션의 전기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무명이었던 뮤지션이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에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이 드러날 뿐이다. 빅토르 초이의 죽음까지 다루지도 않는다.
감독의 의도를 스스로가 원하는 만큼 반영하지 못한 영화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더 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지, 그 시대 억압받던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는 생각이다.
겨울에 보는 여름이라는 작품, 한겨울에 따스한 계절을 떠올리는 마음이 새삼 애잔하게 느껴진다. 감독이 감금된 이유가 무엇이든, 언젠가 좋은 계절이 오면 그 때, 꼭 감독판 레토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