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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Aug 14. 2022

따스한 파이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밀포드에서 비를 만나고 퀸스타운에서는 날이 좋길 바랬지만, 내 바람과 달리 날이 꽤나 쌀쌀하다. 꾸역꾸역 일어나 아침으로 간단히 토스트를 먹었다.


배를 채우고 바로 짐 정리를 했다. 평소보다 날이 더 춥다. 이제 완연한 겨울로 접어든 것 같다. 가져온 옷이 대부분 얇다 보니 추위를 피할 방도가 없다. 그저 옷을 여러 겹 입는 수밖에.

짐 정리를 끝내고 출발. 다시 퀸스타운 고개를 넘는다. 힘겹게 고개를 넘고 frankton을 지나 cromwell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왔던 길을 다시 페달질 해서 갈려니 자꾸 버스가 그리워진다. 날도 매우 추워서 온 몸이 덜덜 떨린다. 보통 정오 즈음되면 해가 보이는데 이번엔 제대로 비구름이 몰렸는지 해도 뜨질 않는다. 


추위를 이겨 낸다고 페달질을 하면 잠시 후 다운힐을 만나 몸이 식어서 오히려 더 추운 느낌이 든다. 지난번 펑크가 나서 존을 만났던 hayes 호수 근처를 지나 퀸스타운을 벗어났다. 익숙한 길이 이어진다. 


'와 지난번에 이 오르막길을 어떻게 지나왔지.'

어느덧 카와루에 도착했다. 궂은 날씨에도 번지 점프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잠시 화장실을 들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Gibston 와이너리를 지나갈 즈음 길이 통제되고 있다는 전광판이 보였다. 절벽에서 돌덩이들이 떨어져 그걸 치우고 있는 듯하다. 1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어제 쪄놨던 옥수수와 바나나를 먹었다. 잠시 후 길이 열리고 다시 출발.


크롬웰 가는 길의 절벽 계곡을 따라 가는데 옆에 살구나무 같은 것이 부러진 게 보였다. 사과는 주워 먹어 봤어도 살구는 가격이 꽤 비싼 과일이라 냉큼 가서 집어 먹었는데 사과다. (속았다.) 게다가 물렁한 것이 뭔가 이상하다.

계곡을 지나 어느덧 크롬웰에 거의 도착했다. 옆에 관광차들이 모인 곳이 있길래 가봤더니 과일을 팔고 있다. 크롬웰이 과일 생산지로 유명해서 값이 싸다길래 들러 봤다. 뭘 살까 보다가 yum yum plum이라고 귀엽게 생긴 자두가 있길래 그걸 집었다. 옆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한국에서 단체 관광을 오신 것 같다. 버스를 보니 고창 고속버스라고 쓰여 있다.

과일 가게를 지나 크롬웰에 도착했다. 날씨가 몹시 흐리고 추워 생각보다 많이 지쳤다. 여기서 쉬고 갈까. 다음 숙소가 있을 곳은 30km를 더 달려야 한다. 시간은 생각보다 여유 있다. 가는 길에 큰 고개는 없어 무난히 갈 거리이긴 하다. '어쩔까..' 하고 가이드북을 보는데 크롬웰에서 자면 내일이 힘들어진다. 30km 후에 80km를 더 가야 다음 마을이 있다. 게다가 1000m에 육박하는 고개도 있다. 안 되겠다. 오늘 어떻게든 30km를 더 빼고 내일 나머지 80km를 달려야겠다.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내일 더 고생할 수 있으므로 몸을 다독여 본다.

와나카에서 퀸스타운으로 갈 때의 호수 건너편 길을 달리고 있다. 익숙한 풍경들이 보인다. 익숙하지만 날이 흐려 음울하다. 크롬웰 에거에서 25km 정도 벗어났다. 이제 거의 tarras에 도착했다. 옆으로 B&B(bed & breakfast)가 보인다. 


'허허 여기 뭐 장사될 게 있다고 숙박 집을 하나.' 


지나치다가 '혹시 tarras에 숙박 시설이 하나도 없는 거 아냐?' 불안감에 가이드북을 보니 역시나 아무 숙박 업소도 없다. 그 이후 80km에도 머물만한 곳이 없다. 어쩌지. 다시 되돌아가서 아까 그 bnb를 가야 하나. 어쩔까. 그래도 혹시 가이드 북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tarras에 도착했다. 이런 정보는 마을 주민이 더 빠싹하므로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에게 혹시 주변에 캠핑할 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처음엔 어떤 홀 앞에 텐트를 치면 될 건데 거긴 캠핑할 만한 편의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야영이야 여러 번 했으니 괜찮다고 얘길 하는데 가만 보자. 이러더니 가게를 그냥 비우시고 옆 가게로 가셨다. 


옆 가게 분과 이야길 하고 오시더니 저쪽 소나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화장실이 있으니 그걸 사용하고 교회 마당에 텐트를 치라고 알려주셨다. 감사하게도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짐을 교회 앞마당에 놓고는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딱히 살 건 없었으나 그래도 고마움이라도 표하고 싶어 우유랑 물을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그때 갑자기 파이가 필요하지 않냐고 해서 그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고기 파이를 두 개나 주셨다. 내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셨던지 가게 문 닫을 시간이 돼서 이거 남으면 버려야 된다는 설명을 해주시며 파이를 챙겨 주셨다. 너무 고마운데 내가 드릴 건 없어서 그래도 기억에 남기려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말씀드리려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쉐릴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니 이제 좀 행복해 보인다는 얘길 하신다. 하루 종일 춥고 음울한 날씨에 달렸더니 어느새 내 표정도 지친 게 역력했나 보다. 작은 질문 하나 던졌을 뿐인데 너무도 큰 도움을 받았다.

교회로 돌아와 아주머니가 주신 파이가 식기 전에 먹고 텐트를 쳤다. 텐트에 짐을 넣고 잠시 쉬었는데 날이 쌀쌀해서 밖에서 움직이기가 싫다. 자전거 왼쪽 페달이 또 덜렁 거린다. 내일 고칠까 하다가 겨우 게으른 몸을 일으켜 페달을 손 봤다. 손에 기름때가 묻었으나 닦을 수가 없다. 휴지로 대강 닦고 우유를 데우고 달걀이랑 빵이랑 같이 먹었다. 손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 그래도 이렇게 잠자리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힘든 하루다. 빨리 추위가 가시길.


주행거리: 9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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