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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Aug 14. 2022

신비로운 밀키 블루 호수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일찍 일어나려 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몸이 움직여 주질 않는다. 7시 반에야 일어나 죽을 끓여 먹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짐 정리가 끝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출발해 볼까? 하는데 어제 자전거 여행을 하던 노부부 중 할아버지께서 말을 거셨다. 어디로 가냐고 하시길래 마운트 쿡으로 간다고 하니 본인들은 트위젤까지 가신단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도록 움직이시는 것 같다. 


나도 시간만 더 있었다면 천천히 움직일 텐데. 아쉽다. 크리스라는 할아버지가 여행 잘하라며 인사하고 가려는 찰나 본인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호주 브리즈번 근처에 있는데 혹시 나중에 호주로 돌아가게 되면 연락을 하라신다. 나도 자전거 여행하는 분이 반가워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길을 나섰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좋을 거라더니 그렇게 많던 구름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오랜만에 반가운 햇볕이다. 이왕 탄 얼굴 더 태워도 좋으니 사라지지 말아 다오. 날이 맑으니 기분도 업되고 주변 풍경도 한결 밝고 활기차 보인다.



트위젤로 향하는 길은 큰 언덕이 없어 무난한 주행으로 갈 수 있다. 중간에 연어 양식장을 들렀다. 아마 데카포 가는 길목에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혹시나 여기가 또 마지막 일까 봐 일부러 들러 가기로 했다.



가게 안에 들어가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먹이를 주라길래 '뭐야 먹고 싶으면 직접 낚아야 하나?'라는 황당한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고 먹이 주면서 연어 구경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는 거였다. 진짜 심각하게 낚아야 하나 고민했다. 달릴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다.


먹이 주고 싶으면 무료라고 쓰여 있었네...


10불에 연어 회를 샀는데 양이 코딱지만 하다. 간장과 고추냉이를 줬는데 나는 준비해온 초고추장과 함께 연어를 먹었다. 부드럽고 살짝 차가운 연어 살이 너무 맛있다. 10불 안 아깝구먼! 

연어를 먹으며 조금 이른 점심으로 빵이랑 바나나를 먹었다.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길을 나선다.



연어 농장을 지나 바로 다리가 보였는데 다리 밑으로 밀키블루 색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어떻게 저런 색의 물이 흐를까.


조만간 트위젤 마을이 보이고 그 길을 지나니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아 시간만 있어도 저곳을 느긋하게 거닐 텐데. 아름다운 호수에 비치는 전경이 퀸스타운 부럽지 않다.



아름다운 광경을 힘겹게 뒤로 하고 테카포와 마운트 쿡으로 향하는 길목에 도착했다. 앞으로 50km를 더 달리면 마운트 쿡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그리 높은 언덕은 없으므로 달릴만할 것 같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초장부터 살금살금 오르막인가 싶더니 달리는 게 상당히 힘들다. 이제 꽤 왔겠지 하고 속도계를 확인하면 얼마 안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푸카키 호수를 마주했다. 밀키블루의 광활한 호수와 저 멀리 눈 덮인 마운트 쿡이 보인다. 룩아웃 장소가 꽤 괜찮다.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삼각대 머리가 부러져있네?  어디서 언제 어떻게 부서진 걸까. 애초에 좀 부실해 보이고 꼬져 보이긴 했는데 몇 번 쓰지도 않고 이렇게 망가져 버리다니. 부러진 부위를 어찌어찌 연결해서 삼각대를 세우고 이제 사진을 찍어 볼까 하는 찰나 갑자기 중국 관광객들이 대거 나타나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며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잠시 기다리니 모두들 호수 근처로 내려갔다. 그제야 사진을 찍는데 멋진 포즈가 생각이 안 난다. 좀 재미난 포즈로 찍고 싶은데.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움직였다. 이제 거의 마운트 쿡에 왔겠지? 앞으로 30km 정도만 움직이면 될 거야.


.....하고 달렸지만 마운트 쿡 마을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저 멀리 마운트 쿡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보이는데 마을은 도대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놈의 길은 높은 것 같지도 않은데 몸이 지쳐 그런지 영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라며 지친 몸을 힘겹게 끌고 가는데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나를 보며 힘내라며 인사를 해주었다. 



드디어 90km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뭐지? 이쯤일 텐데.'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며 힘든 몸을 끌고 왔는데 허허벌판만 보이니 힘이 쭈욱 빠져버린다. 


'아....' 


기력이 없어 겨우 겨우 움직이는데 도대체 도착지점이 어딘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러다 저 멀이 차들이 한 지점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그 위치 즈음 지붕 같은 것들이 보인다. 저곳이구나. 낑낑 거리며 겨우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오른편에 doc 캠핑장 2km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저기만 가면 돼.' 


다시 또 2km를 힘겹게 달렸다. 보통 때면 2km쯤이야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왜 이리 2km가 줄지 않는 건지.



마침내 도착한 doc 캠핑장은 꽤 넓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 없을 정도로 장소가 넓다.



텐트를 치고 짐을 옮겨 넣고는 화장실을 들렀다. 화장실 역시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오호. 비록 샤워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도 준수하다.



볼일을 보고 바로 밥을 했다. 밥과 참치, 김 그리고 미역국이라고 끓인 정체 모를 것을 함께 먹었다. 미역국에 예전에 신라면을 부셔서 먹고 남은 야채수프를 넣고 점심에 연어 먹다가 챙겼던 간장을 넣었는데 희한하게도 우동 국물 맛이 난다. 


어쨌든 따듯한 걸 먹으니 몸이 한결 따듯해졌다. 아무래도 산 옆에 있는 장소라 꽤나 쌀쌀하다. 캠핑장 바로 옆에 눈 덮인 산이 보인다. 식사 후 텐트 안에서 일기를 쓰는데 매우 춥다. 보통은 옷을 껴 입고 있으면 새벽까지는 안 추웠는데 벌써부터 춥다니. 새벽이 두렵구나.


주행거리: 9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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