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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Aug 14. 2022

방명록에 흑역사를 남기고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역시나 새벽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 텐트가 구멍이 숭숭 뚫린 여름용이다 보니 산속에서 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느낌이다. 몸이 점점 추워져서 이러단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일어나 코코아를 끓여 마시고 수프를 먹고 팀탐을 먹었다. 단 걸 먹어야 이 추위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아직 새벽 4시 반을 지나고 있다. 몸을 좀 데우고 한결 나아진 상태로 다시 잠에 들었다.

일찍 일어나 주위를 보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다시 일어나니 오전 8시가 좀 넘었다. 새벽에 먹다 남은 수프를 마저 먹고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 팻말에 후커 벨리라고 표시되어 있고 1시간 반 정도 걸릴 거라고 쓰여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더 빨리 갔다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전거를 끌고 갔다. 

오랜만에 가벼워진 자전거를 타고 가려니 날아갈 듯하다. 조금 갔을까? 자전거로 가기 어려운 길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들고 내려갔는데 다리가 보인다. 다리엔 20명 이상 오르지 말라는 경고 표시가 쓰여 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서면 딱 맞을 사이즈인 다리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자니 아슬아슬한 스릴이 느껴진다. 


다리를 건너고 더 이상 자전거를 못 가져가겠다 싶어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가는 길이 지난번 폭스 글레시어 보러 갈 때의 그런 길인 듯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화라도 신고 오는 건데. 길이 험한데 슬리퍼 같은 걸 신고 있자니 걸음이 느리다.


한 시간 좀 넘게 걸어 드디어 후커 벨리에 도착했다. 호수가 보이고 그 위에 떠 있는 빙하들이 보였다. 진짜 빙하들을 보게 될 줄이야. 그저 멀리서 눈 덮인 산이나 찍고 오겠지 싶었는데 눈앞에 둥실 떠다니는 빙하를 보니 신기하다. 그리고 위엄 있는 마운트 쿡 산자락이 보인다. 허허. 저길 어떻게 걸어서 정복한단 말인가.



사진을 찍고 부랴부랴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까먹었다. 오늘 많이 달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 부리며 달릴 거리도 아니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이미 12시가 됐다. 점심으로 간단히 미고랭을 먹고 짐을 챙겨 출발하려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캠핑장을 나서서 가려는데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마운트 쿡 빌리지는 보고 가야지 라는 생각에 마을에 잠시 들렀다. 정확히는 i site에 갔다가 더 이상 시간을 내기 힘들어 이동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방명록을 왜 이따위로 남겼을까... 지금 보니 너무 창피하다.


자전거 왼쪽 페달이 또 말썽이라 수리를 하고 길을 조금 나서다가 가방에서 뭔가 꺼낼 게 있어서 멈췄다. 찰나에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 부분을 눌러 오른쪽 무릎이 저린다. 다시 몸을 추슬러 출발. 


어제 힘겹게 왔던 길들이 왜 힘들었는지 알겠다. 경사를 오를 땐 잘 몰랐는데 위에서 보니 경사가 꽤 가파르다. 열심히 페달질을 해서 푸카키 호수를 지나는데 호수에 비친 전경들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아름다운 밀키블루 호수 위로 마운트 쿡과 그 주변에 둥실 떠 있는 구름들이 비친다. 


가다가 사진을 찍고 다시 가다가 멈춰 사진을 찍고 아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뒤에서 버티는 풍경들을 지나쳐 푸카키 호수를 벗어났다. 호수가 잠시 눈앞에서 사라지고 조금 달리자 드디어 레이크 데카포로 가는 길 목에 왔다. 



그런데 조금 더 가면 있을 줄 알았던 캠핑장이 없다. 어디서 쉬지? 계속 달리는데 옆에 다시 푸카키 호수가 보인다. 아름답구나. 


호수 옆 소나무들이 있는 곳에 캠핑카들이 몇 대 보인다. 아무래도 저곳에 가면 쉴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시간이 오후 6시가 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캠핑카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팻말에 캠핑 금지라고 쓰여 있고 지도에는 캠핑 그라운드라고 표시되어 있다. 


'뭐지. 캠핑 불가인가.'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여러 차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도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치고 바로 저녁을 해 먹었다. 식사 후 먹고 한결 나아진 상태로 드라마를 봤다.


주행거리: 6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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