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필요를 빚어 내는 일의 기쁨
가을은 오븐을 켜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여름의 들뜬 흥분이 사그라들고 아침저녁 나절의 온도가 차분히 가라앉을 때쯤, 필요한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어 나란히 정리하고, 한데 휘저어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 일은, 어쩐지 너무나 당연한 처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물론 무척이나 게으른 나는, 복잡한 재료(한번 쓰고 나면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그 존재가 잊혀질)는 질색하므로, 늘 가장 단순하고 최대한 적은 수의 재료를 넣은 레시피를 만든다.
예를 들면, 냉장고에 늘 있는 평범한 6가지 재료로 만드는 촉촉한 초콜릿 케이크나, 만두를 만들다 남은 부추와 자투리 치즈로 만드는 스콘 같은 것.
일상의 필요를 직접 빚어내는 일
그러니까 보슬보슬한 밀가루에 물을 부어 빵 비스무리한 형태를 만든 반죽이 한껏 부풀기를 기다리고, 트레이 가득찬 형형색색의 가지, 당근, 애호박 따위를 뜨겁게 달궈진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 일, 그리고, 흙를 조몰락거려 그릇을 만드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손을 움직여 일상의 필요를 빚어 내는 과정의 기쁨.
몇 시간의 노동 끝에, 함께 먹을 빵이 생기고, 빵을 담을 그릇이 생기고, 주방 카운터에 익기를 기다리는 김치가 놓여있는 걸 보며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참 살아있다고 느낀다. 거창하게도.
오늘도 꽤 괜찮은 하루였어. 스스로를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