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우리가한식 응모작
한국에 살 때는 정신없이 일하는 틈 짬짬이 주말장에 들러 묵이니 호박꼬지니를 사서 지져 먹고 삶아 먹고 하는 게 삶의 낙이라면 낙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무엇을 할지를 묻는 것보다 무엇을 먹을 지를 먼저 묻는 게 익숙한, 수산물집에 과메기 출시 대자보를 보고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느끼는, 모든 것이 식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런 식문화 속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 저녁 식구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리고 7년 전 몬트리올로 이민을 오면서 안타깝게도 그 의식은 내 일상에 설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몬트리올에서 제일 맛있는 한국 식당은 어디야?
7년 전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민을 오고부터 친구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여기 한식당들은 아무래도 로컬의 입맛에 맞게 번형해 내 취향이 아니다’ 둥의 말로 대충 얼버무렸지만, 친구들은 날이 갈수록 더 경쟁적으로 새로운 한국 식당 리스트를 가지고 와 내게 테스트를 요구했다. 그렇게 성화에 못 이겨 끌려간 한국 식당에서, 친구들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찌개가 나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게 바로 진짜 진정한 한국의 맛이라는 내 승인이 떨어지기를.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번번이 이어지는 나의 퇴짜. 한국 식당 리뷰에 끝이 없이 까칠한 나를 지켜보던 몇몇 지인들은 투털 대기도 했다. '왜? 이 정도면 그렇게 나쁘지 않잖아.' 본인도 한국에 여행가서 음식 좀 먹어봤는데 이 정도면 꽤나 비슷하다며, 나의 엄격한 잣대에 대한 원성을 토하기도 했다.
내 까칠한 입맛의 정당함을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진다. 나도 누구나처럼 타지생활로 마음이 허전하고 지칠 때면 한국에 두고 온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마음의 위안과도 같던 집밥이 사무치게 그립다. 한국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먹고 싶은 게 무어냐고 물으면 내가 부탁하는 요리는 단연 계절 나물과 된장찌개다. 엄마의 된장은 쿰쿰하다. 멸치와 파뿌리,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은 끓인 채수에 그 묵직한 검은 된장을 한수저 인심좋게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그 깊은 맛이 과연 일품이었다. 된장찌개를 식탁 위에 가져다 놓기도 전에 시골 된장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는 했다. 그 삼삼하지만 묵직한 재래식 장을 넣고 끓인 찌개를 먹으면 타지에서 살며 느끼는 이유 모를 내 마음속 허기가 달래질 것도 같은 그런 날들이 있다.
그렇게 엄마의 정갈한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 같은 밥 한 끼 식사가 그리워 한국 식당을 찾아가도, 어쩐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굶주린 영혼까지는 데피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곤 한다. 어디를 가든 그럭저럭 먹을 만한 식당이 없겠냐만은, 시판 장류로 양념한 달달한 제육볶음의 몰개성한 맛, 달큰한 국과 찌개들, 그런건 고작해야 배고픈 대학 시절 먹던 백반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입안에 쫙 휘감기는 자극적인 인스턴트의 맛 역시 내 이십대의 몇 할을 차지하는 향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결코 내가 곧 죽어도 친구들에게 먹여주고 싶은 내 기억 속의 '기품있는 집밥의 맛’은 아니었다. 쿰쿰한 집된장을 넣어 끓인 구수하고 묵직한 된장국의 맛, 뿌리니 줄기니 버릴 것 없이 다양한 푸성귀들을 말리고 삶아 별 다른 양념도 없이 묵직한 집간장 몇 방울만 털털 뿌려 담아내는 다양한 계절 나물들, 이런 게 내가 자랑하고 싶은 어린 시절의 맛이라는 걸, 내 기억 속 그리운 집밥의 맛이라는 걸, 말로 설명하기는 참 쉽지 않다.
그리운 집장의 맛
향신료를 잘 쓰지 않는 한식에서 어떤 요리의 맛을 결정 짓는 것은 장맛 (간장, 된장, 고추장)이 그 팔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마당 뜰에 커다란 옹기 항아리에 장을 직접 지어먹던 세대를 산 엄마를 둔 내가 어릴 적 경험한 된장찌개의 맛은 정말 다양했다. 할머니, 이모, 그리고 엄마의 된장찌개는 비슷하면서 그 맛과 향이 너무 달라, 같은 물, 콩, 소금의 간단한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다양한 맛이나 내음, 기억으로 쌓아진 장에 대한 레퍼런스가 없는 외국 친구들은, 이런 내 집장 찬양이 길어지려하면 조금 지루해한다. 그때 내가 하는 종종 얘기가 있다. '자, 들어봐. 아주 친한 이탈리안 친구가 네게 맛있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만들어주기로 했어. 그런데 정작 스파게티 소스는 슈퍼마켓에서 산 유리병에 든 소스를 부어 스파게티를 만든다고 상상해봐. 그 맛이 깊을 수 있을까? 이쯤되면 모두들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가성비가 모두의 화두처럼 되어버린 우리네 삶. 한통에 오천 원이 채 안 되는 시판 장류는 이미 요리 꽤나 한다는 주부 9단의 주방 찬장에도 자연스럽게 안착한 조미료가 되어버렸다지만... 이십여 년 즈음 시간이 흐르고, 우리 다음 세대가 기억하는 집밥의 맛이 단가 절감을 위해 콩 기름을 짜고 남은 콩의 찌꺼기에 이런저런 첨가물을 넣어 맛을 낸 획일적인 공장에서 만든 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맛이라는 상상을 하면... 난 좀 서럽다. 그때 우리가 기억하게 집밥의 맛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렇게 한국에서 가져온 장들이 떨어져 가던 어느 날, 나는 장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성 넘치는 '재래식 집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콩, 물, 소금 그리고 시간이 만드는 이 감칠맛의 결정체의 신비함에 대해. 그리고 나는, 내 단골 한식당을 묻던 친구들, 건너 건너 친구의 친구들, 그리고 때론 모르는 사람들을 우리 집 식탁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부엌의 이름은 Minus Kitchen, 불필요한 것은 빼고 꼭 필요한 것만 넣은 재료와 시간이 만드는 내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한국의 맛을 나누고 싶었다. 6년 전 문을 연 서퍼 클럽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두서너 달에 한번 꼴로 문을 연다. 우리 집 거실이 좁아 받을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고 또 좀처럼 자주 문을 열지 않는다는 이유 덕분에, 예기치 못하게도 식탁은 늘 만석이다.
징그럽게 오래 머문 이번 겨울은 6월이 되어서야 떠날 채비를 시작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싹을 틔우는 다양한 식재료를 살펴보며,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식사 준비로 조금은 설레인다. 서로를 모르는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둘러앉은 내 식탁 위로 젓가락이 얼기설기 뒤섞이는 저녁 식사 시간을 상상하며... 그렇게 식사를 나누고 끝내 친구가 되어서 우리 집을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내 기억 속 집밥을 만들어 나누며, 나의 '새로운 가족'들과 장에 얽힌 기억과 추억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