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으로 이사 온 후 다시 주방다운 주방을 되찾고, 나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다.
괜시리 피자 도우를 천장 높이 던져 피자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저리해도 도우가 그닥 커지지는 않는 저급 도우 던지기 실력의 보유자이다)
무려 10달러를 혹가하는 발효종 빵을 사 먹는 것을 대신해, 빵도 굽곤 했다. (좁은 집이 금세 후끈한 오븐 열기로 뒤덮여 더위에 약한 짝꿍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다음 달이면 멕시코를 가기 위해 일터를 떠나는 짝꿍의 친구들에게, 송별 선물 겸 전할 무김치도 만들었다.
집 앞 파머스 마켓에도 바야흐로 수확 철이 시작되었고, 매주 제철을 맞이해 나오는 새로운 종류의 야채를 기다리는 재미에 푹 빠진다.
"호박은 아직 없나요?"
"아 그건 좀 일러요. 한 열흘쯤 있다가, 다음다음 주쯤에 나오시면 있어요."
얼마 전에는 슬로우 푸드 기관에서 주관하는 슬로우 젤라또 워크샵에 참여했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에서 대대로 젤라또를 만들어온 젤라또 장인의 딸 모니아는, 그녀의 뉴욕 브루클린의 젤라또 가게에서 화학 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은 유기농 젤라또를 벌써 10년째 만들고 있다. 그녀와 그의 남편 알레산드로는 최상의 젤라또 재료를 찾기 위해 유기농,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 농업을 짓는 농부들을 직접 만나고 다닌다고 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주저함 없는 말투. 무척 곧은 성품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그녀는, 젤라또가 아이스크림에 비해 얼마나 더 적은 설탕과 지방, 그리고 공기(!)를 함유하는지, 젤라또와 아이스크림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며 차분하게 젤라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워크숍을 시작했다. (젤라또는 아이스크림에 비해 크림보다 우유를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젤라또에는 보통 2~6%의 지방이, 아이스크림에는 20%의 지방이 함유되어 있다고 했다. 또 젤라또는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휘저어 만들기 때문에 공기 함유량이 적고, 따라서 밀도가 훨씬 높고 더 부드러운 맛을 낸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그녀는 진한 연둣빛이 감도는 민트 맛 젤라또(실제 천연 민트 오일은 투명하여 색이 없다), 딸기처럼 새빨간 딸기 맛 젤라또, 혹은 저가 식물성 기름이 주된 재료인 뉴텔라 초콜릿을 인심 좋게 뿌린 젤라또가 어째서 말이 안 되는 건지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굳은 표정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녀의 성토는 사뭇 진지하고 근엄하기까지 했다. 싸구려 가공치즈로 대체되어가는 '가짜' 피자에 항거하여 피자 도우의 발효 방식에서부터 빵의 두께, 토핑으로 올라가는 모짜렐라 치즈까지 엄격한 기준 심사를 거쳐 '진짜' 나폴리타나 피자 자격증을 발부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전통에 대한 자긍심처럼.
그러니까 그녀가 예찬하는 젤라또는 이런 것이다. 거기에는 식물성 기름, 경화유(hydrogenated oil), 모노디글리세라이드(mono-diglyceride: 유화제의 일종), 지방산(fatty acid), 화학 유화제, 농축제(thickener), 색소 등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이름을 한 번에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운 재료들. 어렵게 발음하고 나서도 그게 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이것들은, 보통 대량 생산과 저가 생산을 위해 개발되었거나 화학 비료와 제초제의 개발로 과공급된 작물을 사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개발된 치사한 제품들이다.
대신 그녀는 우유, 달걀, 사탕수수 설탕, 제철과일을 기본으로 정직한 젤라또를 만든다. 그녀는 딸기가 나는 봄철에는 딸기 맛 젤라또를 만들고, 배가 많이 나는 철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배 맛 소르베(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젤라또의 한 종류)를 만들 것이다. 겨울에 딸기맛 젤라또가 없다고 푸념하는 고객들에게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딸기는 봄에 맛있거든요. 냉동 딸기로는 같은 맛을 낼 수가 없어요."
그녀의 눈빛에 서린 강한 자긍심과 그 자긍심과 나란히 하는 카리스마. 아마 그것들 역시 지난 십년, 그녀의 철학을 고수하며 사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했을 재료들이었겠지... 하고 내 맘대로 짐작해본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철학이 있는 사업은 손이 더 가고, 비용이 더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하여 우리는 삶은 복잡해졌다. 우리는 빵 한 덩이, 요거트 하나를 살 때도 아름다운 디자인의 패키지 뒤에 빽빽하게 적힌 원료명 항목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는 '선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보다 더 임무에 충실한 Food Police가 되려면, 제공되지 않은 정보(법적으로 명시가 의무화되지 않은 재료, 혹은 기준량 이하일 경우 적을 의무가 없는 것)들까지 추적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퇴근 후 시장기를 참으며 저녁거리 장을 보는 것은 이제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나는 Food Police로서의 나의 직업을 사랑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나는 부러 버스를 갈아타고, 서너 블럭을 더 걸어 "정직한" 젤라또를 만드는 가족 경영 식당을 찾아가는 수고를 하는 것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한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이름이 들어간 음식을 구매하지 않는 것. 내가 믿는 가치와 철학을 추구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고, 그렇지 않은 기업의 물건이 5배쯤 더 저렴하더라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볼지언정) 내치고 돌아서는 것은,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워크샵은 두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우리는 8가지 종류의 작은 아이스크림 샘플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며 그녀는 바닐라 맛 젤라또 위에 프로슈토 햄(Prosciutto)을 얹은 젤라또를 '디저트'로 내놓았다. 마치 앞서 먹은 젤라또들이 메인요리라도 되는 듯.
단 음식을 짠 음식과 함께 먹는 것(Salé+Sucré)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지만(특히나 아이스크림 젤라또에 염장한 돼지고기라니!), 그건 정말이지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는 더 다양한 짠맛과 단맛의 젤라또 조합이 있다며, 자신들은 잔칫날 가족이 많이 모이면 생선(!) 젤라또를 자주 만들곤 한다고 했다.
끝났나 싶었는데, 그녀는 다시 바삐 주방으로 가서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바이오다이나믹 농장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스파클링 와인을 내왔다. 그리고는 이어, 커다란 프로슈토 햄 덩어리를 가져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미처 다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거들어 먹으라며 잘라 내왔다.
워크샵 진행 내내 그녀의 얼굴에는 홍조가 띠어있었다. 그녀는 동분서주하며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저녁을 건너뛰고 온 사람들마저 충분히 먹었다며 손을 내저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시식용 젤라또를 실어날랐다.
그날 밤 그녀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보였다. 자신이 공을 들여 만든 젤라또가. 대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창조된 친구의 와인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사랑하는 그녀는, 아마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감출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