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을 만드는 과정이야
이직을 했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 맞춰 고민도 새로운 옷을 입고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고민이 있지만 가장 큰 고민은 내가 하는 일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고민은 비교로부터 비롯되었다.
팀에는 같은 날 입사한 사람이 있다. 경력도 비슷하고 심지어 전에 다니던 회사도 아주 비슷했다. 물론 낯선 곳에 의지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 감사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보다 한 직급이 높게 입사했고 그래서인지 그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보다 대단한 것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나는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티는 나지 않는 일들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오랜 시간 자료를 모으고 또 그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일이고, 내가 쓴 글은 무엇을 위한 기반 자료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은 기획하여 실행하면 되는 일이고 그 일은 굳이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쉽게 말해 나는 진득하니 공부를 해야 했고, 그는 바로 움직였다.
이런 고민을 남자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속상하겠다는 위로 후 남자 친구는 나에게 예상 밖의 질문을 던졌다.
너 요즘 필라테스 하지? 운동할 때 근육이 바로 생기지는 않지?
남자 친구의 말대로 최근에서야 나도 운동이라는 걸 시작했다. 심지어 돈을 지불하고 하는 운동은 태어나 처음이다. 명목은 체력 키우기였지만 내심 다이어트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총 30회의 필라테스 강습을 받아보기로 했고 벌써 절반을 넘게 했다.
운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되었다. 일단은 퇴근하고 급하게 시간을 맞춰 가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게다가 평소에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지라 함께 운동하는 동생에 비해 진도도 눈에 띄게 더뎠다. 동작을 잘 따라 하지 못하니 자괴감이 들면서 스트레스도 꽤나 받았다. 무엇보다도, 체력 기르기는 개뿔 운동이 끝나면 기절하기 일쑤였고 몸에는 눈곱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나고 화도 났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포기하라고 유혹하는 나약한 악마가 마음속에서 장악력을 넓혀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남자 친구의 질문을 듣고 보니 1년도 아니고 고작 몇 개월의 운동이 전부였는데 벌써부터 근육질의 좋은 몸매를 꿈꾼 게 잘못이었다. 운동만 하면 뭐하나, 심지어 먹고 싶은 음식도 다 먹고 다녔는데 잠깐의 운동으로 달라지기를 바란 건 과욕이 분명하다.
남자 친구는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운동을 하는 과정처럼, 어찌 보면 직장에서도 지금은 근육을 키우는 과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에야 같이 입사한 그 사람이 부럽고 좋아 보여도 오랜 시간 노력하여 업무를 한 것은 나에게 좋은 근육이 될 수 있다 했다.
결국 나는 너무 조급했던 것이다. 뜨거운 물만 따른다고 해서 차가 바로 우려 지지는 않는다.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맛본 차가 쓸지, 달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 덜 우려진 차를 성급하게 마시고 투정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여러모로 시간이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