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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유주 Oct 26. 2021

김치찌개와 청주 한 병

조선일보 칼럼연재_칼럼니스트 손유주

돼지고기가 소복이 올라간 김치찌개와 청주 한 병을 주문할 때면 늘 선생님 생각이 난다. 나는 학부생 시절 우연히 청강한 연극 수업에 매료돼, 전공과는 관련 없는 연극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기초부터 실력을 쌓아온 동기들과의 수업 시간은 항상 버거웠다. 그렇게 학문의 기본이 부족했던 내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연극학자이신 선생님은 당시 대학에서 석좌교수를 지내고 계셨다. 무용을 전공하다 연극과에 입학한 내 사정을 접한 선생님은 첫 만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마지막 제자라 생각할 테니, 열심히 공부해 보자.”

선생님은 나를 편견 없이 바라보셨다. 숙제를 매번 엉터리로 해가도 꾸짖거나 나무란 적이 없으셨고, 항상 잘못된 부분을 손수 고쳐주셨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종일 과제를 하다 보면 금방 날이 저물었다. 자취생인 제자가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우는 걸 아신 선생님은 학교 앞에서 꼭 저녁 한 끼를 먹여 보내셨다. 그때 선생님과 자주 먹었던 메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였다. 추운 겨울이면 뜨끈한 찌개에 청주 한 병을 주문해, 내게도 몇 잔을 부어주신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철없는 막내 제자의 고민과 질문에 늘 최고의 답을 주시는 분이셨다.                  

찌개집, 초밥집 그리고 생선구이집....선생님과 함께한 소박한 저녁 식사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나를 이만큼 자라게 했다. 제자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동안 선생님은 어느덧 여든 살을 훌쩍 넘기셨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운 중 하나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좋은 스승’을 알아차리고, 그 배움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노력이라고 했다. 그때의 간절함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과 같은 내 소망이 어쩌면 선생님 마음속에 닿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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