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쓰지 못한 글 앞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내 안의 단어를 견디고 참아내느라 긴 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래 울었고, 길게 침묵했다. 그만큼 전부를 쏟았던 장소와 시절과 헤어지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잘 헤어지고 싶었고, 이별의 방법으로 책을 선택했다. 틈틈이 그동안의 사진을 분류해서 저장하고, 키워드를 잡아보고, 일어났던 일들을 나열해 보기도 하며 이야기를 풀기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다. 대연동 생각다방에서 나오면서부터 했으니, 이 책은 5년 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셈이다.
모두가 함께 가꾼 장소이기에 나의 관점으로만 책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고민 끝에 친구들의 이야기도함께 싣기로 했다. 글을 쓰는 일이 그 때를 돌아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원고를 부탁하면서도 미안하고 조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친구들에게도 이별하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비추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해보지 않은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적어가며 모르는 채로 하나씩 해나가는 방식으로 살아온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책인데다 미루다보니 넉넉하지 못한 마감기한 때문에 결국 편집과 디자인도 직접 하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결과적으로 좋은 기회가 되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이며, 따옴표와 괄호의 모양, 글자 모양, 페이지 위치, 이미지의 배치 등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어서 훨씬 자유롭게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책 속에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설명이 부족하거나 엉성하게 이어진 부분이 많아 매끄럽지는 않겠지만, 의문을 품은 채로 끝까지 읽다보면 잘 모르겠지만 붙잡게 되는 하나의 흐름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내 몸 속에서 고장 난 것처럼 멈춰버린 시간, 누구에게나 반짝거리는 시절이 하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시간과 잘 헤어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방법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겪으며 앓을 수도 있을 것이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새까맣게 지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 개인의 역사이기에 글을 쓰면서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2018년 11월과 12월, 나는 홍역을 치르며 시간을 건너왔고, 이 세계의 끝에 도착해서 비로소 붙잡게 된 말을 나눈다.
“이제,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