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Apr 22. 2021

‘고양이의 보은’은 됐고요, 약이나 잘 먹어주실래요?

고양이가 아프면 집사는 마음고생이 극심해집니다.


# 차라리 사람 아이처럼 울고불고 생떼를 쓰더라도 좋으니, 억지로라도 데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달콤한 향이 나는 빨간색 시럽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동그란 사탕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있었다. 잔병치레를 자주 하지 않아 제법 수월하게 자란 아이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고양이, 보리를 만났다. 조금은 덜 예민해도 될 텐데, 조금은 덜 싫어해도 될 텐데, 보리는 병원도 약도 격렬하게 거부하는 전형적인 고양이였다.


대개의 고양이는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에 병원 한 번 가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엄청난 고난도의 일. 집 앞의 동물병원을 갈 때마다 ‘산책’ 시키며 잠깐 들를 수 있는 강아지가 어찌나 부럽던지.


눈치 빠른 고양이에게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일단 경계를 하고 숨어버린다. 안 갈 수도 없고 갈 때마다 거사를 치르는 기분이니, 병원을 다녀온 날엔 심신이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차라리 사람 아이처럼 울고불고 생떼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라도 데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좋아하는 과자나, 좋아하는 인형처럼 유혹할 만 한 건 많이 있으니까. 잠깐의 고통을 참으면 네가 갖고 싶었던 곰돌이 인형을 가질 수 있어, 라고. (제발 고양이에게도 통할 유혹의 비법 좀 알려주세요)


너를 유혹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걸까?



# 쓰레기통으로 약이 버려질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버려진다


갈 일이 없다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며칠 전, 급작스럽게 시작한 설사로 병원을 갔다. 검사 결과 설사를 유발하는 균이 발견되었고 약 처방과 수액, 주사를 처방받았다. 어찌어찌 진료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 닥쳐올 나의 암담한 미래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최고 난이도의 과제, 바로 ‘약 먹이기’를 무려 일주일간 하루에 두 번씩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였다면 “이거 먹고 나면 사탕 먹자~”라는, 내가 어릴 때 들었던 달콤한 말로 현혹할 수 있었겠지만, 이 엄청나게 예민한 동물에게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에 ‘고양이 알약 먹이는 방법’에 대한 내용은 수없이 많고 각자의 방법으로 ‘이렇게 먹이면 정말 쉬워요!’ ‘약 먹이기 꿀팁 대방출’이라는 제목으로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흘러가는 정보에 불과하다. 왜냐, 나의 보리에겐 통하지 않는 방법이니까.


우선 약을 먹일라치면 가만히 안겨 있지 않으며, 입을 쉽게 벌려주지는 더더욱 않는다. 입을 억지로 벌려 목구멍 가까이 손가락을 넣은 후, 약을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하는 일은 서로를 극도의 피곤함으로 몰고 갔다.


끝끝내 먹이지 못한 내 엄지손톱보다 작은 알약 하나에, 내 온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약을 먹어야 빨리 낫지, 다 너를 위한 건데 왜 몰라주니.” 서러운 마음 반, 야속한 마음 반, 눈물이 쏟아졌다.


이미 실패한 알약 2개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보리가 필사적으로 뱉어내면서 찌그러진 캡슐이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 같았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무거운 마음이 처참하게 내던져지는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나왔다. 한바탕 울어 재낀 후 잠을 청했다. 아침엔 그날 할당된 약을 먹여야 하므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데, 눈 뜨고 난 아침엔 약을 먹일 수 있을까. 걱정을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내복약을 받아올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실패와 성공의 기록들.





일주일 치 총 14봉의 약 중 2봉을 버리고, 12봉의 약을 모두 먹였다. 츄르를 주는 척, 츄르 속에 끼워서 몰래 먹이는 거로 이틀을 먹였지만 이내 퉤! 하고 뱉어내 버리는 어마 무시한 녀석이었다. 결국 캡슐에 츄르를 발라 입을 벌리고 넣는 방법으로 어렵사리 약 복용 과제를 마쳤다. 휴, 약 먹일 때만이라도 보리가 사람이면 좋겠다. 어르고 달래서라도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는 어릴 때 약도 잘 먹었는데, 너는 누굴 닮아서 약을 안 먹으려고 하는 거니?!”


비교하는 말은 자녀 양육할 때 금기어라는데, 어쩔 수 없다. 억울하면 약을 잘 먹으면 될 일 아닌가?!  역시 육아의 이론과 실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교하지 말라옹! 비교가 제일 나쁜거다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