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적응하는 중입니다.
퇴직한지 오늘로서 두달하고 16일이 지났다. 퇴직 후 어쩌면 생길지 모르는 공허가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퇴직을 앞두고 부지런히 계획을 세웠다.
첫번째, 대학원에 진학한다. 실재로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문화예술기획을 공부하고 있다. 1학기 수강 과목은 신화와 서사, 지속가능한 관광연구, 문화정책입문 이렇게 3과목이다. 월,화,목요일을 배정했다. 수업은 나를 붙들고 있는 지적호기심 때문인지 재미있고, 텍스트를 읽는 것도,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것도, 중간중간 리포트를 내고 발표를 하는 것도, 젊은 학생들과 토론을 하는 것도 즐겁고 신선하다.
두번째는 아파트 동대표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출마한다. 이 역시도 동대표에 당선되고, 입대의 회장에 출마해 당선되어 주민자치의 기초조직인 아파트 공동체를 운영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위탁관리업체인 관리사무소와 협력해 아파트가 안전하고, 편리하고, 쾌적하고, 품격있는 곳이 되도록 다른 대표들과 지혜를 모으고 있다. 입대의를 선거로 선출하고, 작지 않은 경비를 집행하는 결정을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처럼 비판하는 분들도 있고, 아파트에 이런 저런 일이 발생하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2500세대가 넘는 신축 아파트인지라 챙겨야 할 것도 많은 편이다. 다행히 회사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미리 대비하고, 일정관리를 잘하고, 관리사무소와 협력을 잘 하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관리사무소의 시스템과 제도, 인력이 내가 근무했던 대기업시스템에 비해서는 열악한 상황이라 이를 어떻게 보완해나갈지가 고민이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일도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생각을 벼리게 하는 힘이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세번째는 삶의 꾸준한 동력이 되었던 글쓰기를 계속한다. 사실, 이 부분은 좀처럼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 수업과 아파트 입대의 업무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꿈이었던 일을 즐겁게 하지 못하고 있다.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소설집 [보스를 아십니까]를 발간했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생업이라는 시간에 쫓겨 하지 못했던 글쓰기를 이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매일, 직장에 출근하던 것처럼 매일 책상 앞으로 출근하라고 나에게 말해보지만 소설집필이라는 게 생각처럼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은 책상에 앉는 습관부터 들이자고 노트북을 켜고 구상했던 소설의 얼개를 들여다 본다. 생각이 멀리 갔다가 돌아오기만 반복할 뿐 키보드에 쉬이 손가락이 올라가지 않는다. 오늘 브런치스토리를 다시 여는 이유다. 무엇이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재촉했다. 이제 두 달 반이 흐른 시점. 늘 갈망했던 글쓰기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음을 만끽하는 시간. 나를 믿기로 한다. 결국은 쓰게 될 것이다.
마직막으로 계획한 것은 독립서점 겸 카페를 창업하는 것이다. 부지는 무안군 현경면 가입리 228번지에 마련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김공장 부지를 매입했다. 이제 다 무너진 공장의 잔재를 철거하고, 그 곳에 조그맣지만 평생의 꿈을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 북카페를 지을 것이다. 누가 올 것인가? 사업으로서 성장성은 있을 것인가? 이런 것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바다가 보이는 평화로운 농어촌의 한 켠에서 21c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세상을 온 몸으로 살고 있는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이웃들에게 잠깐 멈춤의 공간으로, 휴식의 공간으로, 재충천의 공간으로 준비하고싶은 마음 뿐이다. 그곳은 거기에 있는 공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획득했으면 싶다.
퇴직 후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거니는 것, 백 팩을 메고 학교로 걸어가는 것,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을 천천히 도는 것, 몸 담은 문학단체의 소소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간간이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현재로선 그것이 나의 여행이고 나는 지금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몸과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