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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작가 Sep 15. 2022

스페인 그라나다 여행

그라나다 츄러스 카페의 추억

 

 그라나다는 내게 머물기보다는 스치는 도시였다. 갈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다가 내가 스페인을 언제 다시 갈 줄 알고!라는 마음에 욕심내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상 40도에 육박하던 세비야의 날씨에 녹을 대로 녹아버린 후라 그라나다에 가는 게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그렇지만 날씨는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힘 내보자.. 하며 나를 달래고 있었다. (라고 하기엔 사실 예약해둔 알람브라의 궁전도 안 갈까 고민했었다.)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를 가는 버스에서 인스타 스토리를 보다가 친구 소희가 그라나다로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영국에서 공부 중이었던 소희는 남자 친구 루이와 스페인 남부로 짧은 여행을 가고 있었다. 우린 연락이 닿자마자 대박을 외치며 그날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늘 하나 없던 넓디넓은 궁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구경하고, 슬러시 한 잔을 쉬지도 않고 한 번에 마시며 체온을 가까스로 내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녁에 소희와 루이를 같이 만날 시간만 바라보며 견디고 있었다.


 저녁이 여덟 시 반쯤 우린 그라나다의 작은 한식당에서 만났다. 한식도 아니고 양식도 아닌 어중간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식사를 마친 뒤엔 루이가 안내하는 츄러스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루이의 대학 친구도 그라나다에 와 있다고 해서 루이 친구까지 넷이 자리를 함께했다. 대만 국적인 두 사람과 한국 국적인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날 스페인 그라나다에 모여, 각자 자신의 친구와 모국어로 대화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문득 한국에서 그라나다를 갈지말지 고민했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소희에게 왜 많고 많은 곳 중 그라나다로 왔냐고 물으니, 루이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보다가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에 가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난 그저 세비야의 옆이라는 이유로, 유럽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으니 들르기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스페인 남부가 도시 하나만으로는 아쉬울 것 같다는 이유로 여행 전에는 지명도 잘 모르던 그라나다에 가기로 마음먹었더랬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결정이 생각지도 못한 대단한 일을 만들어내는 걸 종종 겪게 된다. 그라나다에 머문 시간이 내겐 그랬다. 모든 도시를 통틀어서 가장 짧게 머물렀지만, 가장 짙은 기억이 자리 잡은 도시가 됐다. 고마워 소희, 루이야. 지독하게 더웠지만 그리울 그라나다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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