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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적어 보낸 어머니의 편지

by 별빛소정

나의 시어머니는 쉰 살에 시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일곱 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우느라 평생 허리 펼 날이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시키느라 본인은 늘 뒷전이었다. 어머니가 여든다섯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셨다. 마을 경로당에 한글학당이 생기자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짐없이 배우러 다니신 것이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혼자 힘으로 한글을 깨치셨다. 덕분에 시골 마을에서는 '지식인'으로 통했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의 편지를 읽어주고, 대필까지 해드리며 늘 남을 돕고 사셨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농사지은 채소를 보낼 때면, '더샵센트럴파크', '힐스테이트트라디움' 같은 어려운 아파트 이름도 척척 써서 택배를 부치셨다. 배우지 못했다고 주눅 들지 않고, 배운 것을 삶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신 분이었다.


6개월 동안 다닌 한글학당에서 졸업식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시화전이 열렸다. 어머니는 35년 전 먼저 떠난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시를 적고, 그림을 그리셨다.




그리운 나의 님

이복남


어둡고 넓은 푸른 바다에
손바닥보다 작은달이 떴네
높은 곳에 계시니 달이 더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있구려

바다 밖의 외로운 배
언제 돌아오려고
잔잔한 물결을 보니
꿈꾸이듯 하구나

가는 길 재촉하여 따라가련만
살아가는 힘든 길
그리운 님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네


시아버지는 평생을 바다에서 배를 타시다가 말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남편이 그립다는 말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를 읽는 순간, 그 깊고도 애절한 그리움이 가슴에 와닿았다.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시화집을 읽으며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나는 한 번도 시아버지를 뵌 적이 없지만, 어머니의 40년 동안 쌓인 그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어머니도 우리 곁을 떠나고, 남은 것은 시화집뿐이다.

그리운 어머니, 보고 싶던 아버님을 만나셨나요?
달보다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가요?
어머니가 남긴 시와 사랑은 바람처럼 달빛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그리운 어머니가 유난히 사무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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