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크리스마스였다. 남편이 갑자기 "아난티에 가서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산책하자"는 제안을 했다. 웬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로맨틱한 남자가 아니었는데! 그래서 평소 아끼던 밍크코트를 꺼내 입고, 휴일에는 잘하지 않던 풀메이크업에 높은 구두까지 신고 나섰다.
아난티 코브에 도착하자 남편은 먼저 바닷가 산책로로 가자고 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낭만적인 산책을 기대했지만, 남편의 발걸음은 왠지 급했다. 남편은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어디겠노?" 하고 묻더니 뭔가를 부지런히 찾기 시작했다.
"대체 찾는 게 뭐야?" "거북바위!" 거북바위? 크리스마스에 낭만 대신 바위라니! 알고 보니, 백수 3총사 중 두 명이 거북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크리스마스라 혼자 나가기 미안한 상황에, 아난티 해안길 산책을 핑계로 나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으며 거북바위를 찾던 남편은 결국 나를 산책로에 남겨두고, 거북바위로 올라갔다. 거기서 백수 친구들과 합류한 그는 낚싯대를 빌려 바다에 드리우며 한껏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한 시간 넘게 혼자 산책로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한참 뒤에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디야?"
‘에휴… 아난티에 가자고 해서 호텔 뷔페라도 사줄 줄 알았더니, 결국 백수 3총사라니. 또 이용당했구만.’
남편은 친구들과의 깜짝 만남과 우정 확인까지 하고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해외여행 중에도 나를 놔두고 도박장으로 사라진 적이 있으니 말이다.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날 나는 오시리아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바다를 구경하다가 벤치에 앉아 백수 3총사의 주제가를 AI 프로그램으로 작곡했다. "이게 당신들 이야기야!" 하며 남편에게 보내주었더니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들은 노래방에 올리라고 난리였다. 앞으로 남편을 놀리고 싶을 때마다 그 주제가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불러야겠다. "행복하게 즐겨라, 남편! 행복한 백수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크리스마스의 아난티 방문은 나에겐 다소 황당한 하루였지만, 남편과 백수 3총사에게는 소중한 우정의 순간이었다. 때로는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일상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웃음과 추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 생각한다. 남편의 자유로운 영혼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가 이어질 테니, 나도 유연하게 즐길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