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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an 03. 2025

“잘 잤어?”라는 사랑의 주문

"잘 잤어?”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듣는 남편의 인사다.

결혼 후 주말부부로 지내며 늘 혼자 깨어나고 혼자 밥을 먹던 나에게, 이 말은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는 남편에게 내가 제일 먼저 요청한 것은 아침마다 “잘 잤어?”라고 물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며 “그 뭐시라꼬?” 했지만, 이제는 매일 아침 나에게 인사를 해준다.


“잘 잤어?”라는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나를 환영하는 소리다.
삭막한 아파트 안에서 마치 아침 새소리를 듣는 것처럼 기분 좋은 울림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소가 번지고, ‘잘 잤으니 세상으로 나가보자’는 응원의 속삭임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엄마가 아침에 “잘 잤어?”라고 인사해 준 적은 드물었다. 늘 바빴던 엄마는 내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때 엄마가 웃으며 내 눈을 마주 보며 "잘 잤어?"라고 말해주는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 늘 바빠서 아이들에게 “일어나서 밥 먹어!”라고 재촉을 했다. 하지만 가끔 주말 아침, 푹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잘 잤어?”라고 물어보면, 잠이 덜 깬 얼굴로 배시시 웃곤 했다. 그 순간이 얼마나 따뜻했던지.


“잘 잤어?”라는 말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신의 밤이 평안했기를 바라는 기도,
당신의 낮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희망,
잘 쉬었으니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응원,
그리고 당신이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순수한 바람.
이 짧은 말은 사랑과 기도의 다른 이름이다.





남편에게 내가 요청한 것은 또 있다. 출근하는 나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며 “화이팅!”을 외쳐주는 것.
매일 아침 풀메이크업에 정장을 차려입고 나가는 나를, 남편은 잠옷 차림으로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슬리퍼를 끌며 배웅한다. “화이팅!” 그의 격려에 나도 “당신도 화이팅!”을 외치며 하루를 응원한다.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얹고 나가는 내게 남편은 미안한 마음으로 힘을 북돋아준다. 그 짧은 응원은 무거운 하루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준다.



밤이 되면 나는 늘 바란다. “잘 자~”라는 속삭임과 함께 행복하게 잠들기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매일 밤 내가 외치는 것은 “시끄럽다!”이다. 나는 소리에 예민해서 조금만 소리가 들려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반면, 남편은 TV나 유튜브 소리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 서로의 숙면을 위해 각방을 쓰지만, 방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는 여전히 내 귀에 꽂힌다. 정치 뉴스, 주식 뉴스, 골프 뉴스…

잠들 만하면 들리는 이 소리에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시끄럽다!”를 외친다. 남편은 익숙하다는 듯 “어~ 소리 줄일게”라고 답한다. 이 소리가 매일 밤 우리 집의 일상 루틴이다.



하지만, 고요한 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잘 잤어?”라는 한마디가 나를 맞이한다. 그 속에는 평안했던 밤에 대한 감사, 행복한 하루를 바라는 소망, 그리고 서로를 응원하는 사랑이 담겨 있다. 덕분에,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말 한마디가 서로를 따뜻하게 만들고, 그 따뜻함이 우리를 지탱한다. 결국, 사랑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잘 잤어?” 같은 평범한 순간 속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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