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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선 Jul 30. 2020

뉴 노멀 시대,
핀란드 디자이너 마인드가 Key(2)

김윤미 비즈니스핀란드 수석상무관, '왜곡' 벗기면 한국이 일등 선진국

핀란드 디자이너 45인과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어낸 <디자이너 마인드> 저자 김윤미 비즈니스핀란드 수석상무관과의 인터뷰를 1편(https://brunch.co.kr/@esmin/11)에 이어 계속 이어간다. <디자이너 마인드> 책이 바로 어제 2020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함께 전한다. 세종도서란 구 문체부 선정 우수 교양도서를 말하는데 전국 900여 국공립도서관에 배포가 되니 처녀작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인 셈.


-스웨덴과 핀란드 간의 관계는 어떤가요? 한일관계 같은가요?
“친하기도 하고 라이벌 관계이기도 합니다. 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약간 그런 느낌은 있지만 스웨덴은 핀란드를 착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일관계와는 좀 다릅니다. 한일전 축구할 때 우리가 꼭 이겨야 하듯이 그런 정서는 비슷합니다. 러시아는 적국이라 생각하지만 스웨덴은 적국이라 생각지는 않아요. 핀란드가 안보에 대해 위협을 느낀다면 그건 당연히 러시아입니다. 핀란드를 침공했기 때문이죠. 스웨덴은 국가의 개념이 없을 시대에 산업을 일으켜준 것이라 우리처럼 나라를 빼앗긴 상황은 아녔습니다.”

 

-앞서 핀란드 사람들에 대해 '좋은 사람들'이라 표현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갖고 있나요?
“자기 나라에 대한 민족주의가 강합니다. 지배를 오래 당한 민족인 데다 국가가 나중에 형성됐기 때문에 애국심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가 남이가’하는 의식은 한국 사람들과의 공통적인 면이고요. 프랑스 영국은 유구한 역사가 있지만 핀란드는 1917년 독립 이후에서야 시작한 나라라 과거를 인정하는 그룹이 있고 인정하지 않는 그룹이 있습니다. 그 이전 것을 우리의 역사로 부정할 수는 없고 또 인정하기는 싫고.. 이런 심리가 있어요. 일례로 미술관도 스웨덴 시절의 미술을 핀란드 미술로 치지 않습니다. 내셔널 뮤지엄에 넣지 않고 그냥 누군가의 컬렉션으로 프라이빗 뮤지엄에 소장합니다.  
 
핀란드 사람들이 주로 배우는 역사는 근현대사, 그 이전은 스웨덴의 동쪽 땅, 스웨덴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는 바람에 러시아로 넘어가서 러시아의 자치국이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역사가 독특하죠. 러시아에 혹독하게 저항하면서 내전도 겪었지만 사람들이 온순하고 착한 편이고, 상대방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일본의 배려가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들의 배려는 상대방을 고려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나라도 작고 역사도 짧은 핀란드는 참으로 연구대상입니다. 제가 역사 지식이 짧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폄하하는 습관은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1910년부터 35년간 조선인은 못나고 열등한 사람으로 평가됐고 우리 스스로도 그런 무의식 속에 한 세대가 세뇌를 당한 것이니 직접 당한 세대와 그들의 영향을 받은 두 세대의 공통점입니다. 우리는 사실 항상 싸움만 하고 서로 못마땅해하고 분열하고 지금도 분단돼있잖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야에 대해서 알게 됐을 때 흥미로왔던 게, 누군가 너네는 제대로 한번 통일된 나라인 적이 있냐, 화합해서 살아본 적이 있냐 하는데 가야 시대에는 철저하게 합의정치였더라고요. 싱가포르가 다민족 국가이면서 철저하게 합의정치 체제잖아요. 가야는 강력한 정부 체제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마치 연합정부처럼 합의정치였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분열하는 나라라 생각하는데 실상 우리 히스토리는 그렇지 않아요. 게다가 가야 역사가 600년이니 조선보다 역사가 더 길었다는 사실이죠. 한데 우리는 가야를 잘 알지도 못합니다.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공부해서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장점을 찾아내고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 세계 경제규모 11위인데 우리만큼 스스로 후진국이라 생각하는 나라도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건 뭔가 우리가 교육을 잘못 받은 것이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일터뷰 내내 핀란드 식기에 담겨진 브런치와 디저트를 먹으며..


핀란드는 이딸라, 마리메꼬, 아르텍 등 자국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엄청납니다.  핀란드에는 자국 브랜드 외에 글로벌 명품 브랜드도, 패스트패션도 별로 없습니다. 전 세계 도시의 얼굴이 명품과 패스트패션으로 거의 동일해지고 특히 패스트패션은 전 세계 패션시장을 왜곡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헬싱키는 그렇지 않아요. 자라, H&M은 있긴 한데  젊은 애들이 좀 사지만 어른들은 거의 사지 않지요. 상류층들도 명품백을 잘 안 들고 다녀서 럭셔리 브랜드도 잘 안 팔립니다. 시장도 작고 소비자 성향도 그렇고.. 1인당 GDP는 핀란드가 높지만 세후 가처분소득은 한국이 훨씬 높습니다." 


-핀란드 디자이너는 심플하면서도 기능적이며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 작업으로 평가받습니다. 또 이와 연결해 보자면 핀란드 기업은 작고 강하죠. 이유가 뭘까요.
"핀란드를 대표하는 알토대학에 들어가면 분야를 나누지 않고 프로젝트 수업을 합니다. 1학년때는 전공 영역을 정하지않고 디자인 자체를 배웁니다. 대학원 들어가서야 패션, 텍스타일, 세라믹, 가구 등 전문 분야를 나눕니다. 알토 디자인학과 학생들은 패션을 했다가도 언제든 가구로, 세라믹으로 바꿀 수 있어요. 이렇게 다른 영역과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변화를 가져가는 것이 훨씬 넓고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한길만 파는 게 마스터로서의 길은 되겠지만 요즘 같은 융복합 시대에 얼마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니까요. 일례로 이딸라에서 새로운 글라스 제품을 디자인할 때 글라스 전문 디자이너에게 맡기지 않고 메탈이나 다른 재질을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겁니다. 새로운 시각을 위해서죠. 이들은 대체로 인하우스 디자이너를 두지 않고 외부 디자이너를 활용합니다.

내부에 디자인 프로세스를 매니징 하는 매니저는 있지만 디자이너는 거의 없습니다. 마리메꼬, 이스쿠, 이딸라, 아라비아, 아르텍도 초기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었지만 거의 없애고 외부 디자이너와 작업합니다. 그 이유는 아웃 소싱할 디자이너 풀이 풍부하다는 것,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내부적으로는 회사를 작게 강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거죠.

 


내부에 디자인실을 꾸민다는 것은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각도 나오기 힘들죠. 디자이너들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라스만 하거나 패션만 하지 않고 다양하고 새로운 소재를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인력이 아주 많습니다. 하리 코스키넨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 스튜디오도 내부에 3~4명 이상 디자이너를 고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이상 되면 경영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핀란드에서는 큰 회사라 해도 디자인은 대부분 프리랜서이고 전 직원이 100명 200명 수준입니다. 기업들이 작고 단단하고 애자일 하게 가는 쪽을 지향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스 프로덕션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인하우스를 줄이고 외부 디자이너를 키우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요. 기업들은 물론 내부 디자인팀을 원하겠지요. 외부 디자이너는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으니까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로나 19로 인해 디지털라이제이션이 가속화되고 사람이라는 매개체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사람을 줄이고 디지털라이제이션과 무인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디지털라이제이션이 사회의 세이프티 넷(사회안전망)으로 작용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사재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사재기하지 않아도 누군가 갖다 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쿠팡과 마켓컬리가 있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와있을 테니 사재기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성숙하게 행동합니다. 영국만 해도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지만 주문하면 열흘 뒤에 와요. 열흘 치를 사재기해야 하는 거죠. 디지털화, 물류 이런 것들이 세이프티 넷으로 작용한 겁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해외 미디어에 북한 이슈 말고 가장 많이 보도된 게 코로나였습니다. 동료들과 통화해보면 한국이 가장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보도됐더라고요.

시민들의 성숙한 태도도 물론이지만 쿠팡과 마켓컬리, 배민(배달의민족)까지 잘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디지털화=세이프티 넷'임을 기업들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이를 더 가속화할 것이고 IT 인프라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 떨궈져 나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이슈가 되겠죠. 핀란드도 점차 무인화되면서 직업을 잃게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숙제입니다.

 


디지털화라는 것은 더 매시브 하게 움직이고 규모가 클수록 이윤을 남기는 것이지만 항상 반작용으로 수작업의 가치도 더 인정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더욱 로컬 아트&크라프트가 하나의 중요 트렌드로 부상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디자인 싱킹과 디자이너 마인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탈되는 인력 풀들은 결국 디지털화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디바이드 될 것입니다. 그들을 디지털 세계로 보내 재취업시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 반작용 흐름에 올라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겠지요. 디자인 능력이 있다면 창업이 가능할 거고, 그 창업을 잘 키워서 다시 큰 플랫폼으로 돌아가는 디지털 경제와 맞물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전체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고 그래서 디자인 싱킹이 매우 보편적인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큰 흐름은, 소비자 트렌드가 자국 공예 중심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걸 일본이 리드하고 있고요. 우리는 우리의 공예에 대해 너무 모르잖아요. 세라믹이나 도자는 핀란드보다 우리가 훨씬 더 훌륭합니다. 핀란드 작품(상품)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는 장응복 선생님을 좋아하고 우리 것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로컬 아트 앤 크라프트(Art & Craft)의 활성화, 그것을 존중하면서 거기서부터 글로벌화되는 흐름이 지금의 트렌드인 거죠.

여러모로 로컬 트렌드는 훨씬 더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겉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 것에 더 치중하고 열광했다면 이제는 겉모습보다는 속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정신세계가 고도화되면 결국은 자기 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하나의 지표가 생기는 거죠. 로컬 아트 앤 크라프트를 얼마나 존중하느냐 라는 건데 내 것을 모르면 ‘해외 따라기’인 셈이죠."

-한국 핀란드 간 산업 연계 중 성공 실패 사례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 부담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공의 기준이 좀 다릅니다. 제가 제일 잘한 것은 ‘라이프스타일 핀란드’ 행사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뭔가 조직화된 프로모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8~9회의 행사를 기획, 진행하면서 핀란드 디자인에 대해 오거나이즈 한 것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이 잘했다고 평가받았고 행사에 참여했던 기업들의 피드백도 정말 좋았죠. 행사 전과 후가 달라져서 핀란드 디자인에 대해 국내에 확실히 어필됐고 미디어 커버는 물론 인지도, 호감도가 확실히 올라갔다고 자신합니다. 이후 핀란드 상품의 수입도 훨씬 많이 증가했고요.

 
두 번째는 핀란드의 헬스케어입니다.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않았던 디지털 헬스케어(의료 데이터를 이용한 제약개발이라던가 디바이스 개발, 의료 서비스 등) 분야는 핀란드가 한국보다 앞서 있다, 핀란드가 제일 잘한다는 것이 정부 기업 커뮤니티 등 전문가 영역에 알려지고 인정받게 됐지요. 이건 100% 미디어 활동을 통해 핀란드 브랜드를 만든 겁니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의미가 있는 스토리 빌딩을 기획해서 성과가 좋았습니다. 제로에서 톱으로 올라가는데 2년 반 걸렸어요.

 


아쉬운 점은 핀란드 기업들이 자금력이 없고 마케팅의 중요성을 잘 몰라 지원이 잘 안된 것? 좀 더 지원이 이뤄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 수입업체들은 오히려 밀어붙이는데 핀란드 기업들의 규모가 작고 슬로해서 진행이 잘 안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관광, 헬스 부문의 핀란드 브랜딩은 아주 잘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스칸디나비안 라이프에 대한 타이밍도 좋았고요. 본부 친구들과도 합이 잘 맞았고 인더스트리별로 일하는 동료들도 저를 믿어주고 잘 서포트해줬고요.”
  
-일하시면서 느낀 '핀란드 정신'이란 게 있을까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합니다. 바로 ‘시수(SISU) 정신’이죠. 눈이 무릎까지 쌓이면 우리나라 같으면 부모가 초등학교 자녀를 데리러 나가지만 핀란드 엄마들은 혼자 오게 내버려 둡니다. 뭐든 요란을 떨면서 시작하지는 않지만 하기로 한 것을 끝까지 해내는 것? 꾸준히 전진하는 것?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오게 하는 것? 우리 눈에는 대체 이게 뭐가 될까 싶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뭔가 돼있습니다. 그게 이들의 힘입니다.
 
우린 좀 시끄럽게 시작하고 중간에 바꾸거나 포기하는 것도 적지 않은데 얘네는 조용히 시작하고 중간에 잘 안 바꿔요. 혼자 단독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합의에 의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간에 그걸 바꾸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시작한 일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그 지점에 도달합니다. 그게 정책뿐만이 아니라 업무 할 때도 똑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합의해서 하기로 한 일이면 그것이 대단한 일이건 대단하지 않은 일이건 해냅니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그것이 핀란드의 힘이 됩니다. 하지만 뭔가 확 불붙는다거나 엄청난 일이 금방 이뤄지지는 않아요. 우리는 3~4년 만에 신도시가 뚝딱 들어선다면 이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움 가운데 소리 소문 없이 조금씩 일이 쌓여서 좋은 결과물이 언젠가 이뤄지는 거죠. 그것이 이들의 ‘시수 정신’이자 힘입니다.

덴마크에 휘게(Hygge)가 있고 스웨덴은 라곰(Lagom)이 있는데 핀란드는? 시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강조하지만 왜곡된 것만 걷어내면 우리가 훨씬 더 훌륭합니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보편성에 입각해서 핀란드가 우리를 선진국이라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

 


-개인 스토리도 좀 들려주세요.
“저는 숙대 정치외교과를 졸업했어요. 원래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아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 때는 중국 미국 정치 등 해외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원 외교학과 논문도 스웨덴에 대해 썼고 일은 그 옆 나라(핀란드)에서 하게 됐네요.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지금도 한국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우리 상황을 잘 반영한 사회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이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잘 성장한 나라라서 관심이 가고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어떻게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변화했는지도 제게는 관심 이슈입니다. 제가 논문 쓸 당시에 유수 해외 대학들에서 그에 대한 논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복지국가가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나, 저도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원래 어려운 계약서나 법령을 분석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데 이건 제가 좀 리걸마인드(Legal Mind, 법률적 사고체계)가 발달돼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다닐 때도 로펌의 기업 국제계약서 한영 번역하는 알바를 하면서 학비를 보탰습니다. 이때 국제변호사로의 꿈을 키우게되면서 졸업 후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려고 유학을 준비했죠. 하지만 중간에 갑상선항진으로 강도높은 공부를 하기 어려워 유학을 포기하고 취업으로 선회하게 됐어요. 우연히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핀란드 무역상무관이었죠. 제가 좋아하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비슷하니 이 나라를 경험해보자, 막내로 입사해 6개월 다니려던 것이 23년이 됐습니다.^^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에 장기 재직할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인들은 뭘 조금 해줘도 아주 많이 고마워해요. 다만 제가 오지랖이 넓은 게 난치병(?)입니다. 조금 해도 될 일을 그만큼 잘하기 위해 주변을 건드려주고, 성향을 이해해야 일이 더 잘 되니까 잘하기 위해 과외 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거죠. 시간이 더 걸리지만 핵심을 확실히 알아가는 식으로 일해서 남들은 모르지만 쓸데없는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미래에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새 책 계획도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제 자산은 핀란드에 대한 지식과 경험, 네트워크이겠죠. 이를 활용해 핀란드에 대해 더 연구하고 여러 분야에 대해 한국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재해석하고 싶어요. 그게 책이 됐던 콘텐츠가 됐건, 기사나 기업이 됐건 은퇴를 한다 해도 그런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핀란드에는 전체적인 디자인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단체가 아주 많습니다. 수과학과 관련된 디자인 능력도 키워주고 놀이와 진로 두 가지를 충족시켜주죠. 앞으로 핀란드의 좋은 사회적 기업, 교육 사업, 문화예술과 관련된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과 핀란드 간 공예 디자인과 예술 전시도 하고, 좋은 것을 매칭 하는 일 등 은퇴 이후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다음 책 계획도 있어요. 핀란드에서는 소도시의 페스티벌 때 자기 집을 오픈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집들이 너무 예쁩니다.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미니멀리즘 한 핀란드 디자인, 스칸디나비안 디자인과는 또 완전히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영상과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윤미 수석상무관 프로필
현재 디지털라이제이션 담당 수석상무관
2015-2020 5월 :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대표
1992~현재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비즈니스핀란드코리아) 근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정치학 석사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기타 :
Certified Management Consultant
<디자이너 마인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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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전재호 Pho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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