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0미터 : 水深 혹은 愁心 10m로 들어가는 길>
프리 다이빙을 하면서 느낀 글을 쓴다고 해놓고 4번째 글이 올라올 때까지 난 아직도 글 속에서는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다. 뭐든지 본론으로 들어가지 전에 서두가 길고 길다. 이런 것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얘기해 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막상 쓰려니 쓸 이야기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글을 쓰는 나에 대한 자기 반영이 계속 이루어 지면서 또 글쓰기가 지연된다. 그럼에도 쓰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실천하고 너무 각설하지 않기 위해 내가 정한 나만의 전개법은 앞편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번에 프리다이빙을 보고 화둘짝 놀랐다가 지금은 이길로 들어서서 책을 두 권이나 쓴 어떤 사람의 이야기에 나의 생각을 얹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죽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포츠’에 대한 충격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하고 직접 경험해 본 미국인 저널리스트 제임스 네스터는 2011년 잡지사의 의뢰로 이름도 낯선 프리다이빙 대회를 취재하러 갔다가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년 반동안 프리다이버를 만나러 전 세계 바다를 다니며 직접 체험하고 배운 것들을 책으로 출간하였고, 그 경험에서 파생된 또 다른 중요한 핵심 과제인 호흡에 관한 책은 올해 출간하였다. 나도 2019년 프리다이빙 교육을 받고 나서, 부가적으로 찾아간 곳은 요가수업이었다. 이유는 호흡을 잘 해보고 싶은 바램에 이것저것 찾아보니 그래도 요가가 제대로 된 호흡을 배우기 가장 적합한 활동임을 알게 되었고, 많은 프리다이버들이 요가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서 같이 시작하였다. 가장 역설적인 부분이 이것이다. 무호흡으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호흡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숨을 오래 참기 위해서는 호흡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프리다이빙의 시작이다.
2014년에 출간된 제임스의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DEEP: Freediving,Renegade Science , and What the Ocean Tells Us about Ourselves) 는 (원제에서 말하듯이) 바다가 우리 자신에게 말해주는 것을 프리다이빙을 통해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이것은 이전에 몰차노바가 말한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한 기자가 겪은 오디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작가처럼 스케일 크게 덤벼보지는 못했으나 프리다이빈에 대한 나의 집착의 시작점과 발단과정이 유사했다는 점이었다. 동네 수영장 밑 바닥에서 숨을 참는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 호흡 수업에 참여하고, 물 속에 들어가자 마자 느끼는 그 이상한 공포감에 대한 고백과 프리다이빙을 알게 되면서 우리 자신이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변화’되는 느낌이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면서 엄청난 동질감에 위안을 받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의 생존법에 위배되는 이 프리다이빙을 설명해 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과학적인 용어인 ‘포유류 잠수 반응(mammalian dive reflex)’ 이다. 프리다이빙 첫 이론 수업에 이 인간의 반사신경에 대해 배우고, 이 용어를 또 듣게 된 곳은 인지행동 치료 중 하나인 변증접적 행동 치료를 공부하면서 또 한번 알게 되었다. 변증법적 행동 치료(DBT)에서는 비정상적으로 흥분된 정서조절을 하기 위해서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가서 맥박을 낮추고 흥분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바로 이 효과가 인간의 포유류 잠수 반응을 적용한 기법인다. 우리 얼굴, 특히 비강 주변이 차가운 물에 닿자마자 우리의 몸은 다양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특히 우리 몸 중 뇌, 폐, 그리고 심장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 변증법적 행동 치료에서는 우리의 급성적인 정서 반응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 반사작용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속에서 물리적으로, 그리고 이어서 정신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이미 육지에서도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 속에서 두려움을 넘어서 직감하데 되는 무언가는 바로 물리적, 정신적으로 건드리는 이 포유류 잠수반응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는 이 반사작용을 좀더 ‘시적으로’ 표현하여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라는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지은 용어로 설명하였다. 이 반사작용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이것이 물 속에서 엄청난 수압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 전환이 우리 인간에 내재되어있던 숨은 기능을 발견하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 이 시스템 전환이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나나 이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몸과 생각이 저항했고, 그 저항을 이겨내려고 내적, 외적으로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같은 종족들이 비율적으로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가 반드시 물 속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평생 살아가면서 스스로 버거운 외부의 자극에 이겨내지 못하고 부적응적인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다가 결국에는 막다른 길에서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를 찾으려 손을 뻗게 된다. ‘더 이상 혼자서는 해결할 수가 없어서 왔어요’ 라고 말하는 내담자들이 그러하다. 그들과 함께 더듬더듬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를 찾는 과정이 내가 하고 있는 상담치료라고 믿고 있다. 상담치료는 치유의 방법을 치료자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마스터 스위치를 켜기 위해 함께 가는 여정이다.
제임스 네스터 저/김학영 역 | 글항아리 | 2019년 08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