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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받은 여행자 Jan 08. 2022

3화 :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 -상실과 재생의 블루

수심 10미터 :  水深 혹은 愁心 10m로 들어가는 길



  

  “프리 다이빙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물 속 깊이 내려갈 때,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체 세상의 일부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과 하나 된 우리. 그러나 우리가 다이빙하면서, 무엇인가 의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수면 위에서는 이렇게 많은 것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죠. 우리는 가끔 리셋 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리다이빙이 그렇게 해줄 수 있습니다.”


  - Natalia Molchanova (1962~2015) - 

 <Image from https://youtu.be/3hMs_Id5Kwc>

 


   아마도 내가 물 속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영화 속에 물과 블루에 대한 탐색이 없었다면, 러시아 프리다이버 몰차노바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 속에서의 첫 경험들은 거의 실패였고, 여긴 내 구역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두려움과 아쉬움만 남겼었지만, 물 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난 다시 물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를 만난 것이다. 작년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거의 암흑기였던 시기에 지금은 고인이 된 러시아 프리다이버 나탈리아 몰차노바의 삶을 다룬 영화 <원 브레스 One Breath>(2020)가 개봉되었었다. 많은 프리다이버를 설레게 했을 영화였지만, 실제로 극장에서는 거의 구경도 못해보고, 바로 모니터로 볼 수 밖에 없었던 아쉬운 영화였다. 그녀의 이야기가 특별했던 것은 단순히 탁월한 수영 선수가 40대에 프리다이빙을 시작해서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가 깊은 바닷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에서 그치치 않는다. 그녀가 물 속에서 겪었던 과정은 프리다이빙의 본질을 어떠한 상징적인 메타포나 어려운 말들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녀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리다이빙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처음엔 나도, 그리고 어떤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녀의 기사들을 검색하다가 이 인터뷰를 발견하고 살짝 설레고 흥분했었다. 그러면서 맨 처음 물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했던 그 시작이 떠올랐다.


  2015년 색채심리라는 것을 우연히 배우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 속에는 온통 영화 속 컬러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 언어들이 퐁퐁 비누방울처럼 떠올랐다. 이전에 영화학을 배우고 가르치면서는 민감하게 의식하지 못했던 컬러의 이미지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터치하고 있었는지 새삼 알게되었다. 내가 강의를 구상하면서 0순위로 떠오른 영화는 바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였다. 나의 시그니처 컬러인 블루를 탐색하면서 자연스럽게 20여년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출렁이는 파도를 가르면서 뉴질랜드 섬으로 들어가는 작은 배를 수중에서 찍어올린 시작 숏과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손가락이 잘리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섬을 떠나는 배에서 피아노와 함께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들어간 깊은 바닷 속 주인공의 모습은 블루라는 상징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의 시작과 마무리 같았다. 블루는 영화 내내 차갑고, 아슬아슬한 불안감을 주는 색인 동시에, 상실의 고통을 블루의 필터링으로 처리해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온 주인공 에이다의 내적 삶을 보여주고, 그러나 결국에는 깊고 차가운 바닷 속을 거치면서 블루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그러니까 블루는 상실과 재생을 모두 이루게 하는 색이었다.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쓸고가는 무서운 파도는 마치 모든 걸 다 삼켜 버리는 괴물의 혓바닥처럼 관용도 없이 거칠다가도, 그 물 속에서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두려움을 그대로 수용할 때에 바다는 비로소 삶의 경계를 넓혀주고, 삶을 재부팅하게 해준다. 주인공 에이다는 그렇게 삶을 다시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 5살 이후 잃었던 말을 다시 배우고, 다시 사랑하고, 살아간다.

 

   색채 심리를 배우면서 이 영화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색과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난 그 영화를 통해 블루의 상징으로써 뿐만 아니라, 물 자체가 지닌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원형적인 존재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후 몇몇 영화 속에서 이와 유사한 블루와 물에 대한 은유적 연출을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물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상상을 키워가게 되었다. 처음 영화와 색에 대한 강의를 할때만 해도 난 내가 프리 다이빙을 배우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영화 속 물과 블루의 이야기 시작이 결국 여기까지 왔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참 길고 느린 나의 이 여정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금 여기에서 생각해보니, 몰차노바가 말한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탐색이었다. 물론 이제 시작하려고 발을 무겁게 올려 들어섰을 뿐이고, 저만치 리셋 버튼을 발견한 단계이다. 아마도 그 리셋의 순간을 <피아노>의 주인공 에이다가 경험했을 것이다. 충동적이었으나, 결코 우연이 아닌 본능적인 직감으로 선택한 일이 그녀의 삶을 리셋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


<One breath> (2020)

러시아 제작

Elena Hazanov 감독

Odin vdokh (2020) - IMDb 

<이미지 출처 : 네이버>


<The Piano> (1993)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제작

Jane Campion 감독

https://www.imdb.com/title/tt0107822/?ref_=ext_shr_lnk



















< Breath2020One Breath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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