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0미터 : 水深 혹은 愁心 10m로 들어가는 길>
프리다이빙 강습으로 실내 수영장에서 얼굴을 물 속에 처음 담갔던 순간이 떠오른다. 학생 때 수영도 어느 정도 다 배웠고, 대학생 때는 스쿠버 다이빙 강습도 받았고, 결혼 후에 인도양 바닷 속도 들어가 보았다.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별거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왜 심장은 그렇게 꿍딱꿍딱 뛰었는지 모르겠다. 첫 강습 전날은 잠을 거의 못잘 정도로 긴장 되었었고, 어쩌면 난 애초에 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다른 강습 동기들의 표정을 슬쩍슬쩍 살피면서 강사가 가르쳐준대로 물 속에 얼굴을 담갔다. 입에 물은 스노쿨로 준비호흡을 하다가 숨을 참기 전 최종호흡을 한다. 내 몸이 느끼기에 폐에 가득 공기가 찼다고 생각되는 순간 스노쿨을 빼고 온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머무른다. 시간을 카운트하는 것보다 차라리 노래를 속으로 부르라는 강사의 말대로 노래를 떠올려 본다. 이소라의 노래가 나도 모르게 떠올라 시작했지만 중간부터 가사가 꼬이고, 꼬인 가사만큼 내 속도 꼬이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리는 거 같기도 하고,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가슴이 답답해 오고 그냥 고개를 들고 싶었다. 어떤 것도 잡지 않은 상태에서 물에 둥둥 떠서 힘을 빼고 있으라지만, 둥둥 어디론가 흘러갈 것만 같은 그 상태가 왜 그렇게 두렵고 겁나는지 모르겠다. 기껏 흘러 가봤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5미터 수심의 실내 수영장인데 말이다. 두려움은 내가 아는 것들을 순식간에 잠식시켜 버리고 나의 이성이나 판단도 마비시킨다. 안다고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알아야지 두려움과 친해질 수 있다.
수면에서부터 나는 두려움이란 보이지 않는 대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물 속에서 수압과 무호흡을 위한 반복 훈련을 하면서 나는 익숙치 않은 감각의 상태가 만들어내는 두려움에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주저하다가 다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 몸이 조금씩 물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익숙하지 않은 물속에서의 감각을 반복을 통해 내 몸이 받아들이면서, 나는 조금씩 더 깊이 물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강사의 설명에 의하면 내가 5미터 들어가면, 그 다음에 내 몸은 5미터에서의 감각을 기억하고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신기했다. 내가 첫 10미터를 다다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7미터 지점이었다. 항상 그쯤에서 나는 '왜 이렇게 멀지, 안되겠어, 그냥 위로 올라갈까'라는 찰나의 망설임과 강한 호흡충동을 느꼈다. 지속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나는 그 지점에서 반복되었던 나의 생각을 억누르고 10미터 바닥에 도달했다.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는 나같은 프린이에게는 강요나 설명보다 강사의 기다림과 지지가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기능하였다. 10미터 수영장 밑바닥까지 내린 줄을 잡고 한뼘한뼌 내려가는 시간은 실제와는 다르게 슬로운 비디오처럼 늘어진 시간으로 흘러간다. 가슴과 머리에 오는 압박에 적응해가면서 이퀄라이징을 잘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내려가는 그 1분여의 시간동안, ‘웅’하면서 머릿 속을 울리는 소리같지 않은 소리는 나를 공포에서 점차 그냥 그런 또 다른 감각의 상태로 안내해 주었다.
프리 다이빙을 통해 두려움은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익숙해 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기대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오는 감각의 오류는 두려움이라는 얼굴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감각의 새로운 상태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직면한 두려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얼굴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익숙해 질 때 그것은 더 이상의 두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의 앎과 사고의 기능은 더욱 확장된다.
나의 오래된 내담자는 상담 초반에 이런 말을 푸념하듯이 내뱉은 적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또 다시 반복한다는게 너무 힘들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상담치료를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었던 그는 상담의 시작 초반에 어떠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상담치료를 위한 기초 정보를 작성하고, 호소문제들을 이야기하다보면 자신의 과거를 훑어가면서, 온갖 약점들을 드러내야 한다. 두려웠던 순간, 괴로웠던 순간들을 다시 반복하면서 아직도 진행 중인 자신의 고통을 호소해야 한다. 때로는 시작하자마자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이걸 해서 정말 달라질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수도 있다. 매 회기 반복되는 상담사와의 지루한 대화는 정말로 나를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길로 가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버티고 한뼘한뼘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두렵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변화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상담사는 그냥 지지자요, 함께 해주는 버디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물 속이 두렵다. 바다는 여전히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검은 목구멍같고, 그 속에서 나는 더 큰 두려움의 얼굴과 마주칠 거라는 상상을 하고 여전히 하고있다. 그러나 내가 수면에서 수심10미터까지 어떻게든 결국 내려갔듯이, 나는 또 10미터에서 더 깊이 내려가보고 싶은 바램이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어린 딸을 데리고 수심 10미터 풀에 갔던 날이 기억난다. 수심 10미터 바닥에 발을 디디고 서서 저 멀리 수면에서 딸이 강사와 강습 중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던 날은 한편의 영화장면처럼 내게 각인되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울컥했고, 너무 기뼜다. 그리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