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귀해진 터치에 대한 고찰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대면 교류가 줄었고 대면 상황에서도 마스크로 숨결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은 물론 의도치 않게 몸이 닿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을 피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였지만 서로의 몸에 가닿을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많은 이들이 접촉 결핍이 주는 허기와 외로움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 한 연구에서, 10만 명을 대상으로 상기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이에 대해 무려 72퍼센트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들 중 40%는 40대 미만이었으니 연령대 불문하고 그렇다고 답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더욱 따뜻하고 부드러운 접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사회문화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터치를 받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아, 터치에 익숙하고 터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 잘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도 나이가 들수록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섹스와 무관한 따뜻한 터치를 많이 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오감 중 ‘시각’이 이성과 가장 밀접한 감각으로 여겨져 온 반면, ‘촉각’은 육체에 더 가까운 동물적이고 저급한 감각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할 때 어떻게 하는가? 볼을 꼬집어 본다. 내가 지금-여기에 생생하게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촉각만큼 신뢰로운 정보가 없다. 긴장감이 심하거나 혹은 무감각하여 현실감각이 떨어질 때 심리상담에서 그라운딩(grounding)이라는 기법을 이용한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느낌, 의자에 엉덩이와 등의 무게가 실리는 느낌과 같은 촉각 자극에 집중할 때 견고한 현실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 나와 타인 간에 이루어지는 가장 원초적인 교감의 언어가 바로 터치이다. 열 마디 위로의 말보다 따뜻한 한 번의 포옹이 큰 위안을 줄 수 있다.
다정한 터치는 우리의 생존 및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접촉이 부족할 때 우리는 생기를 잃고 병들기 쉽다. 부드럽고도 견고한 터치를 충분히 경험할 때 우리는 더욱 생생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터치는 꼭 필요하지만, 특히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 터치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터치를 해주면 좋지만 부족하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너무 많이 안아주면 의존성을 키운다고 잘못 생각한다('적절한' 좌절은 필요하지만 아이 기질에 따라 조절이 필요하다).
신경학자 사울 쉔버그(Saul Schanberg)가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갓 태어난 새끼 쥐를 어미 쥐가 핥아주지 못하게 하자, 새끼 쥐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어미의 핥는 행위가 사람으로 치면 만져주는 것과 같은데, 터치가 박탈되자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터치는 새끼 쥐에게 없어도 그만인 자극이 아니라 먹이만큼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간을 대상으로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실험을 할 수 없지만, 전쟁의 비극을 겪으면서 유사 실험 상황이 펼쳐졌고, 인간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다. 국제 사회가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재정 지원을 많이 하여 전쟁고아들이 일반 가정보다 더욱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보통 가정의, 가난하여 때로는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 비하여 발육이 느렸고 병에 대한 취약성도 높았다.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접촉의 차이였다. 고아원 아이들은 보통 가정의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받는 애정 어린 포옹, 쓰다듬기, 안아주기와 같은 터치를 거의 받지 못했던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혼자서는 대처하거나 내적 상태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양 공급과 돌봄을 전적으로 양육자에게 의존해야 한다. 터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기의 몸은 더 오래 생존하기 위한 자동적인 반응으로써 덜 움직이고 신진대사를 늦추며 성장까지 멈출 수 있다. 접촉이 결핍된 아기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면서 늘 경계 상태를 유지하고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규칙적으로 안고 만져주면 몸을 이완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부교감신경계가 자극되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 긍정적 기분과 관련된 호르몬이 분비된다. 마사지와 같이 부드럽고 충분한 압력을 가진 터치를 해주면, 공격 행동과 관련된 호르몬인 아르기닌 바소프레신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크게 줄어들면서 감정조절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코르티솔이 감소되면 염증이 억제되고 백혈구 수가 증가하며,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어 면역반응이 더욱 활성화되는 긍정적 연쇄작용도 일어나 건강하게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 아울러, 상호 교감에 바탕을 둔 지속적인 따뜻하고 견고한 터치는 자존감, 타인에 대한 신뢰, 사랑하는 능력 발달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동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주로 양육자)과의 신체적 교감을 꺼리는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들도 알게 모르게 접촉을 갈망한다. 자라면서 양육자를 포함한 어른이 아이에게 터치하는 것이 성적인 의도가 담긴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터부시 하는 분위기가 있고, 아이도 양육자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준비하며 양육자와 신체적인 접촉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원한다. 아이들은 떨림을 주는 사람을 찾아 연애를 시작하거나 또래와 몸을 부딪치는 운동이나 댄스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촉 욕구를 채운다.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일정한 양의 접촉 자극을 필요로 한다. 누군과의 관계를 통해 이러한 접촉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으면 동물을 포함한 어떤 대상을 만지며 교감하는 행위를 하거나 '셀프 터치'를 더 자주 하게 된다. 동물 키우기, 화분 가꾸기, 가구 만들기, 뜨개질, 샤워하기, 화장하기, 주무르거나 터뜨리는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이 이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접촉에 대한 결핍이 심하면 특히 부정적인 형태의 셀프 터치를 많이 할 수 있다. 초등학생이 됐는데도 아기 때나 하는 공갈 젖꼭지나 엄지손가락을 빠는 행동을 한다든지, 손톱이나 피부, 머리카락 뜯는 행동, 머리를 흔들거나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두드리는 등의 행동, 자위를 과도하게 하는 행동 등을 한다면, 모두 부정적인 셀프 터치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이런 행동 습관이 있을 때, 행동 자체를 크게 나무라며 못하게 하는 대신 접촉에 대한 욕구가 결핍된 상태임을 인식하고 아이를 더 많이 보듬어주고 안아줘야 한다.
아동과 마찬가지로 어른도 접촉을 통해 불안감과 통증 감소, 긍정적 기분 증가, 면역반응 활성화 등과 같은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면역 관련 장애(거의 모든 장애가 면역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다), 통증 장애와 같은 신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불안과 우울, 주의력 결핍 문제와 같은 정신적 장애에 마사지 치료가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한다. 꼭 전문적인 마사지가 아니더라도 연인 간의 애정이 담긴 마사지나 가까운 사람과의 포옹 등과 같은 접촉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연인이나 자녀와 같은 특별한 관계 외에는 ‘불필요한’ 터치는 삼가는 경향이 있고 가까운 관계마저 터치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성이 발달한 성숙하고 독립적인 어른의 몸은 따뜻한 손길을 받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건강한 접촉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특히 타인과의 접촉을 불편하게 느끼며 자신에게 접촉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불안정 애착 유형의 하나인 회피성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보통 접촉을 싫어한다. 이들은 어릴 때 양육자에게서 터치를 포함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릴수록 말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놀아주고 터치로 사랑을 표현해야 아이들이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환경에서 외로움에 고통을 겪다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결국 ‘몸으로 (자신 및 타인과) 소통하는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들에게 접촉은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가 자신의 신체를 가볍게 터치해도 경계가 침범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극소수의 사람만에게만 터치를 허용하지만 특별히 즐기지 않을 수 있다. 회피성 애착 유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문화적으로 남자아이들은 커갈수록 스포츠나 놀이 상황 외에는 동성 간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어, 접촉을 더욱 낯설게 여기며 자라는 경향이 있다.
한편, 건강한 접촉을 받은 경험은 있지만 누군가에게서 폭력적인 터치(ex. 성추행, 폭력 등)를 경험을 했거나, 나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던 손길이 동시에 나의 존엄을 파괴하는 손길이 되었다면, 즉 접촉 자체가 트라우마 경험이 되었다면 접촉은 복잡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접촉과 관련하여 처리되지 못한 강렬하고 부정적인 기억이 몸에 각인되어 있어, 접촉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 누군가 자신의 몸을 만지면 잘 느끼지 못하거나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접촉을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지만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접촉을 원한다. 다만 예측 불가능하게 주어지는 접촉을 싫어할 뿐이다. 이들도 부모와 가까운 지인들과 기꺼이 악수하고 포옹한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의 저자이자, 동물학 교수인 템플 그랜딘은 자신의 몸 전체에 압박을 가하는 장치를 개발하여 거기에 들어가 종종 ‘압박 치료’를 받으며 불안감을 달래고 휴식을 취하고는 했다. 몸 전체에 충분한 압박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포옹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접촉이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잘 모른다. 그래서 접촉 결핍에서 오는 고독감과 외로움을 다른 데서 채우려 한다. 폭식을 하거나 알코올이나 담배에 과잉 의존하고, 여러 중독 행동에 빠지거나 친밀한 교감이 부재한 원나잇만을 즐기기도 한다. 외롭고 우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화 상대를 찾거나 상담을 받고 정신과 약물을 먹는 경우는 건강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측면만 고려하고 가장 본능적이며 근본적인 소통인 접촉의 결핍까지는 미처 생각이 이르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여러 효과를 얻는다면 어떤 부분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 분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마사지를 받고 헤어나 네일을 하러 가는 이유는 ‘미용’과 같이 표면적으로 중요한 목적들도 있겠지만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과 마주 보며 춤을 추는 사교댄스에 빠지는 것도 몸을 움직이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활력을 불어넣고 소통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과 단단히 손을 잡고 몸을 부딪치는 접촉이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를 채워주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크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그렇다. 반려동물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을 쓰다듬고 안고 놀아주는 과정에서 무수히 이루어지는 신체적 접촉들은 어떤 곳에서도 얻기 힘든 풍부한 접촉의 원천이다. 이들에게 정들고 사랑에 빠지는 데 터치가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접촉 위안이라는 힘은 간과되기 쉬워, 그저 마사지가 좋다, 사교댄스가 좋다, 반려동물 키우기가 좋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예의 차원에서, 괜한 터치로 문제가 될 소지를 줄이기 위해 서로의 몸을 만지지 않는다. 주로 대화를 나누는 심리상담에서도 다정한 시선과 표정, 목소리, 언어가 주된 도구이지만 여느 전문적인 서비스들처럼 터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트라우마를 주호소로 하는 내담자를 만날 때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 거리부터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로 조정을 하며, 손길이 의도치 않게 부딪히는 상황조차 내담자의 경계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어 조심한다. 트라우마 내담자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손을 잡는 행위만으로도 성적인 의도나 다른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오해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치료적으로 필요하다는 중대한 판단을 내린 경우가 아닌 이상 접촉하지 않는다.
나 또한 이러한 원칙을 고수해 왔고, 무용동작치료와 같이 접촉이 때로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접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터치 연구자들은 터치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언어적/정서적 공감 반응보다 10배의 강력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의사를 만나는 많은 성인 환자들도 의사의 다정한 손길에서 큰 치료적 효과를 느낀다. 그렇다면 내담자가 마음이 아파 고통스러워할 때 상담사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을 해주는 것이 어떠한 위로의 말보다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터치에 대해 지금보다 조금 더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인사와 같은 의례 상황에서, 어느 미국 유치원에서 하는 것처럼 인사만 하기, 하이파이브 하기, 주먹치기, 포옹하기와 같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경계 설정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상담실 안에서 뿐만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과 접촉이라는 신체 언어로 소통하는 데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정이나 학교 그 어디에서도 신체적 접촉을 하기에 앞서 동의를 구하고 경계를 설정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니, 그런 것이 필요한지도 잘 몰랐다. 접촉과 관련된 모든 폭력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한번 접촉을 허락한 적 있다고 해서, 내 연인이라고 해서 나의 몸을 언제든, 어디든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는 뜻은 아님에도, 암묵적으로 그렇게 오해한다. 누구든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접촉을 원하지 않을 수 있고 허용할 수 있는 접촉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터치는 언제나 협상의 결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계가 명확하고 안전한 터치만큼 우리에게 안정감과 힘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접촉이 기피되는 사회에서, 내게 주어진 여건 안에서라도 나름대로 따뜻한 접촉의 노력을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에게, 연인에게 오늘도 수고 많았다며 꽉 안아주거나 마사지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무릎에 올라온 애완동물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다정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다. 혼자 산다면 친구에게 인사로 포옹을 해주거나 마사지 샵에서 마사지를 받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정한 터치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생기를 충만하게 불어넣어 줄 것이다.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