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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영 Oct 07. 2022

불안정한 내가 어떻게 좀 더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나

동현 탄신일에 부치는 글

오늘은 남편인 동현이 탄신일이다. 우리는 2013년 3월 어느 날 만나 2013년 7월에 사귀기 시작했고, 2021년 11월에 결혼했다.


8년 연애를 했는데 (아쉽게도) 동거의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집도 결혼식 4일 전에 입주...), 오래 사귄 커플이라고 하나, 같이 사는 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눈 뜨면 옆에 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하고 좋다.


동현이를 만났을 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성숙한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당시 다시 대학을 다니며 막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파탄 난 연애 경험밖에 없었으며, 미숙한 면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연애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되는지 등등 자기 객관화가 거의 안됐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애착 유형으로 따졌을 때 불안정 애착 유형 중 불안형 혹은, 회피형/불안형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혼란형에 가까운 상당히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내향적이며 사람을 잘 믿지 못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나를 온전히 내던지고 싶은, 거의 자아를 잃는 수준의 융합을 이루고 싶은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Photo by Atharva Tulsi on Unsplash


동현이는 나보다 네 살이 어렸지만 따뜻하고 성숙해 보였다. 이 친구는 나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사귀고 보니 따뜻하긴 한데 거리감이 잘 안 좁혀졌다. 통념적인 연애 도식에 맞는 행동을 거의 안 하기도 하거니와('널 이만큼 사랑해', 하는 행동을 잘 안 보여줬다는 말...), 내가 원하던 그런 융합을 이룰 '열정'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애 초기에 특히 내가 먼저 시비를 걸고 많이 싸웠다.


지금 보면, 동현이는 애착 유형 중 회피형에 가깝고 동현이 나름대로 알고 있던 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씩 열면서 서서히 신뢰를 구축해 가야 하는 친구인데, 그걸 나도 몰랐으니까,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마음의 문을 안 열어 주냐'며 대문을 아주 쾅.쾅.쾅.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이렇게도 던져 보고 저렇게도 던져 봤지만 항상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 내지는 높고 큰 벽이 있다고 자주 느꼈다. 생각이 많던 나는 온갖 부정적 생각을 많이 했고, 그 끝에는 '동현이는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는구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모양의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혼자 많이 괴로워했다. 이런 생각이 너무 마음 아프니까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뒤로 물러나 벽을 치기도 했고, 불안하고 힘들지만 계속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기를 반복했다.


오랜 연애를 하며 지치지 않고 계속 그럴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불타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서서히, 그러나 점차 견고하게 안정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현이가 조금씩 신뢰롭게 마음을 열며 보여주었던 변화가 그 자체로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심리학과 심리상담 공부가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안정감과 확신을 느끼며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는 어릴 때 원했던, '나를 잃는 융합'을 바라지는 않는다. 내 안에 여전히 그런 합일에의 욕망은 있지만, 각자의 단단한 고유함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는 일시적으로 끈끈한 연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만큼은 아주 여린 모습부터 강인한 모습까지, 유치한 모습부터 진지한 모습까지 여러 모습을 편안하게 공개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여러 모습에 대한) 통합감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서로를 크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동현이와의 관계는 내가 그 어떤 관계에서 느끼지 못했던 '치료적 관계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도 이러한 관계 경험을 통해 '획득된 안정 애착 유형'이 될 수 있다) 내가 전보다도 훨씬 안정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조금 더 누군가를 위해 베풀 거나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키울 수 있게 된 것 모두, 동현이에게 상당 부분 빚졌다.


그러니 동현이의 탄신일은 내게 매우 기념비적인 날이고,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며, 열렬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틈만 나면 고맙다고 표현한다.) 사랑해, 동현.


Photo by Everton Vila on Unsplash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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