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제약은 당연한 것에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어제는 실로 오랜만에 남편과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했다. 임신 사실을 거의 확인하자마자 여러 이벤트가 있어 움직이는 데 제약이 많았다. 요즘은 배가 자주 뭉친다. 파열되는 통증과 함께 배뭉침이 찾아오면 꼼짝없이 몇십분은 누워 있어야 한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많이 걷다 보면 뒤꿈치가 아파서 어느 순간에는 멈춰야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걷고 싶어 한다. 그런 내가 지금은 작은 보폭으로 느리게 조심조심 걷는다. 급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속도가 빨라지면 어김없이 배가 돌처럼 딱딱해지고 골반 근처에서 날카롭고 강하게 당기는 느낌이 찾아온다.
허리 통증도 있다. 20~30분 정도 앉아 있으면 허리 통증이 점차 강해진다. 출혈 이벤트 때문에 장기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을 때 자세가 바르지 않았던 탓도 있고 원래 생활습관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배가 커지니까 그 통증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허리가 너무 아프면 눕는 것을 포함하여 어떤 자세를 취해도 계속 아프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필요한 경우 아니면 움직이거나 오래 앉아 있는 일을 자제하게 되었다. 이렇게 운신의 폭이 제한되면서부터 상실감이랄 것을 느끼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움직여 내 몸을 간수하고 주변을 정갈하게 하고 앉아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은, 언제나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몸의 컨디션을 살펴 몸이 허락하는 순간을 찾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몸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전보다는 휴식을 자주 취해 줘야 한다.
이 모든 게 번거롭게 여겨지면서 짜증 나고 울적해지는 순간이 많다. 한편 무언가 몸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주어지는 게 아닌 한정된, 아까운 기회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도 늘었다. 이 점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주어진 것에 겸허하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좀 더 삶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게 된다.
무언가가 내 일상 속에 기본값으로, 배경처럼 항상 주어지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황이든 말이다. 나는 내담자들에게 감사일기 쓰기를 권할 때가 자주 있다. 감사일기를 쓰면 우울, 불안 등 각종 부정적 감정들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도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런데 감사한 일이라고 하면 누가 봐도 감사할 만한 근사한 어떤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감사할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찾기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대단하게 감사할 일을 찾기보다는 나의 삶이나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보며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이전에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는지, 앞으로 그것들이 계속 당연할 것인지, 그것에 제약이 있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간접 경험해 본 후에도(이럴 때 유튜브가 도움이 된다) 나에게는 그것이 정말 당연한지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크고 작은 삶의 고통과 제약을 겪게 되면 그러한 고통과 제약이 삶의 중심이 되어 힘들게 노력하지 않는 이상 감사할 거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그러한 고통과 제약이 장기화되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거나 객관적으로 가망이 없을수록 감사함을 느끼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어떠한 삶에서도 이전보다 조금은 나은 순간들이 잠깐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최대한 붙잡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뭔가 항상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원하고 큰 꿈과 희망을 품기 좋아한다. 그 소망이 클수록 이전보다 부족한 것, 내가 원하는 삶이나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초라한 것들에 눈길이 더 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마음의 습관은 고통과 제약을 겪고 있을 때 불필요한 고통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삶에 들이닥친 고통과 제약을 (안타깝고 아쉽기는 하나)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여기면, 위기가 기회의 전환점이 되듯, 삶에서 감사한 것들을 새삼 '발굴'하고 주어진 삶에 좀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어제의 데이트는 건강하고 아이가 없는 우리 커플이 늘상 할 수 있었던 "평범한" 데이트였다. 전보다 그나마 운신의 폭이 늘어 외식만 하고 돌아오고 최소한의 볼일을 보고 돌아오기만 했었는데, 어제는 외식도 하고 임신하고 처음으로 영화도 보고 대형서점에서 신간도서를 구매하고 짧게나마 카페에서 햇볕을 쬐며 책도 읽었다. 허리와 꼬리뼈도 계속 아프고 중간중간 배뭉침 통증이 강하게 밀려오면서 집중하기 어려울 때도 잦고, 모르고 조금 보폭을 넓혀 빠른 속도로 걷다가 파열되는 듯 밀려오는 통증에 괴롭고, 택시가 안 잡혀 추위에도 떨고 버스를 탔으나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아 짜증도 났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너무 쉽고 언제든지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유한하게만 찾아오는 기회임을 느끼며 이 순간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도 자주 피어올랐다. 사람 많은 장소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문명인'처럼 영화도 보고 서점에서 책도 골라올 수 있어 좋았다. 큰 온도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강렬한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지고 애일 듯 차가운 바람에서도 청량한 시원함을 찾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언제나처럼 거실에서 반려자와 저녁밥을 먹으며 재밌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시선을 돌리면 귀여운 얼굴이 있었고 우리는 다정하게 스킨십을 나눴다. 지금은 내 몸의 제약만이 있을 뿐이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기호에만 맞춰 음식을 고르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이 모든 것을 고요함 속에서 방해받을 염려 없이, 짓눌릴 듯한 피로와 책임감 없이 할 수 있는 이 시간도, 특히 젊고 아이가 없는 부부로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을 더 확장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삶, 살아있음 자체가 언제까지고 당연할 수 있겠는가?)
마음은 날씨와 같아서 이러한 다짐의 선명함과 강도가 고저를 이루지만, 내 몸이 지속적으로 보내오는 고통과 제약의 순간들을 '알람'처럼 활용하여 주어진 작은 순간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온 마음을 다해서 삶에 뛰어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의식적으로 자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