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집은 먹고살기 바빠서 크리스마스를 따로 챙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매우 어린 나이부터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 집에는 굴뚝같은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나는 선물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다행히 내가 우는 아이여서 선물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화영화를 보면 산타가 썰매를 끌고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배달해 준다. 어렸어도 왠지 그건 너무 느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산타는 내게 그저 만화영화에 나오는 존재일 뿐이었다. 해리포터를 본다고 꼭 마법의 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 그런 느낌에 가까웠달까.
유치원 다니던 7살에 부모님들도 참석한 자리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을 줬던 적은 있다. 할아버지는 아니었고 분장을 한 젊은 산타였다. 이 모든 게 쇼라는 걸 알았지만 선물은 좋아했으니까 기대되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나는 소심하고 쑥스러움을 잘 타는 아이였는데 앞에 나가 뭘 받으려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런데 선물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앞 친구가 굉장히 큰 선물을 받았다. 나도 큰 선물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내 선물은 많이 작았다. 작아서 좀 슬펐다. 그 와중에 어렴풋이 부모님이 마련한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나는 내 선물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부모님에게 물어봤던가. 유치원에서 따로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던 게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잔인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분위기는 좋아했다. 내 생일이 12월 23일이어서 그즈음의 festive한 분위기가 마치 내 생일을 더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10-11월부터 캐롤을 듣는다. 올해는 너무 더워서 11월부터 듣기 시작했다.
결핍 때문에 애어른이 빨리 될 수밖에 없었고 산타 추억을 갖지 못해 좀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한이 맺히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내 아이가 태어나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산타가 있다고 믿게 해 주고는 싶다. 선물은... 그냥 적당한 거 사주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