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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Aug 09. 2023

요즘 뭘 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1

“요즘 뭐 하고 있어?”

먼 곳에 살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를 하는데 친구가 물었다. 가끔 전화로 각자 키우는 고양이의 안부를 주고받는 외삼촌도, 시시때때로 통화를 하는 부모님도, 친한 친구들도 모두 내게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질문을 한다.

“요즘 작품활동은 뭘 하고 있어?”

“언니, 최근에는 뭐 했어?”

“지난번 책 나온 뒤로 뭐 다른 건 안 하고 있니?”

주위에서 내가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때는 별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해방감에 마냥 행복했던 시절에는 같은 질문을 자주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요즘 뭐 하냐는 질문이 나오면 긴장된다.


질문받기가 무섭게 신이 나 대답을 하던 때도 있었다.

“나 요즘 책 작업하잖아. 여름에 출간예정이라서.”

“그래? 또 책이 나오는 거야? 대단하네, 뭐에 대해 쓰고 있는데?”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말하는 사람도 망설임 없고 듣는 사람도 그다음 대화를 이어가기가 수월한 그런 대답. 하지만 올해는 짧고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핸드폰을 귀에 대고 고민에 빠졌다. 나도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라 머리가 멍해졌다. 작은 목소리로 그냥 책도 읽고 글도 조금 끄적이고 있다고 얼버무린 후 얼른 친구의 최신근황으로 화제를 돌렸다.


고양이 엄마가 물고기를 낳고 키우는 내용의 그림책을 내고 딱 한 달만 쉬려고 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를 핑계로 몇 개월이나 집에서 느슨하게 시간을 보낸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골책방 사장님들과 생전 처음으로 팟캐스트 녹음도 몇 번인가 진행했고 고양이 대한 글을 세 편 써서 원고료도 받았다. 그림 샘플을 그려 출판사에 보냈고 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기로 계약했다. 책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드로잉 연습도 하며 머리와 손을 풀었다. 방 한 칸을 작업방으로 만들며 새가구를 들이고 일주일 넘게 대청소도 했다. 작은 메모지에 적혀 여기저기 낱장으로 흩어져버린 일들. 한 권으로 보기 좋게 묶어 보란 듯이 내어놓을 수 없기에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자립작가 지망생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5년 동안 책을 몇 권 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내니 누군가 작가라고 불러줘도 티 나게 겸연쩍어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창작을 지속하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라는 단어는 자립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나는 자립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글과 그림을 생산해내야 하고 결과물에 대해 나도 독자들도 만족할 만큼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창작물로 돈을 벌어 가계에 도움이 돼야만 한다. 직업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다. 요즘 뭘 하고 있냐는 다정한 안부인사가 뜨끔하게 들린다는 건 자립을 위한 행보가 순조롭지 않다는 뜻이다. 저작활동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온종일 쓰고 그려도 모자라다는 걸 알면서도 의욕을 잃고 시간을 죽일 때가 있다. 슬럼프의 시기에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곧잘 받을 법한 이 평범한 질문이 내 귀에 무겁게 변형되어 울린다. ‘나는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죄책감으로 가득찬 마음을 누른다.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창작을 업으로 하는 한 요즘 뭘 하고 있냐는 질문이 나오는 순간이면 나는 숙제를 했는지 묻는 선생님 앞에 선 어린아이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인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물어주길 바란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항상 고맙고, 요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기회는 소중하다. 적어도 다섯 번에 세 번 정도는 ‘나 요즘 책 쓰고 있어.' 혹은 ‘나 이번에 책 나왔는데.’라며 또박또박 대답하고 싶다. 그리고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듣고는 애써 수줍은 척 아니라고 겸양을 떨고 싶다.






얼마 전 엄마와의 통화에서 요즘 뭐 하냐는 말에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거렸다. 다행히 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공고가 올라오면 나도 신청을 해보겠다며 엄마의 관심을 돌려 위기를 모면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오랫동안 쓰고 싶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주제를 꺼내 들었다. 한동안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할 거리가 생겼다. ‘나 요즘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고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립하기 위해 보낸 시간에 대해 쓰고 있어. 어떻게든 스스로 굴러가보려고 했지만 빈번하게 멈춰 한자리에 오래 머물렀던 날들의 좌절과 실망에 대해, 운 좋게 내리막길을 만나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갔던 날들의 기쁨과 희망에 대해. 나는 그래서 지금 쓰고 그리며 창작을 하고 있어.’ 당분간은 누군가의 안부인사에도 난감해하지 않고 명쾌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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