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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Apr 27. 2018

6mm 캠코더 씁니다.

기계치의 눈물 나는 아날로그 길들이기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낡고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말 그대로 하이퍼 새벽 감성 리얼리즘의 소유자가 되어버린 슬픈 짐승이 바로 나다. 


아날로그는 골치 아프다. 시간이 흐를 수록 없어져 가는 것들을 붙잡아 두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진관에 전화를 걸어 필름 파나요? 라고 물어만 봐도 요새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의 반응을 벌써 여러 번 들어왔다. 장비도 점점 없어지고 일일이 비용은 들고 자칫하다가 고장날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다 관두고 싶게 만드는 사진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아날로그를 추구하느냐? 답은 간단하다.


내가 얼마 전에 산 야시카 일렉트로 35당. 개인적으로는 블랙이 더 이뿌다. 가난한자의 라이카라는 타이틀은 좀 맘에 안들지만 성능면에서.. (설명충 생략)


시시한 이유겠지만 이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결과물은 더 이쁘다. 그래도 요즘은 인스타그램 덕에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따라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찍고, 맡기고, 인화하면 감성이 잔뜩 묻은 사진이 응애 하고 나온다. 


그런데 지금 나는 필름 카메라보다 더 큰 아날로그 장벽을 마주쳤으니.. 6mm 캠코더다. 

우리 딸내미 이뿌네~ (드라마 내용은 섬뜩하지만 적절한 짤이 이것 뿐이다. )

어렸을 적의 모습을 옛날 비디오테이프로 담은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수많은 어린이 속에서 용케 날 찾아내 내 서툰 동작을 서툴게 담아낸 부모님의 영상에서 참 많은 게 느껴졌다. 지나가버린 추억, 누군가의 흘러간 유년기가 극대화되어 찾아온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지금 잠시 핸드폰 동영상 기능을 거두고 6mm 캠코더를 쓴다. 우리의 젊은 날을 캠코더로 더 소중히 담아주기 위해.


중고나라를 통해 카세트테이프를 다량으로 샀다. 엄청 찍었다. 근데 문제는 이걸 어떻게 컴퓨터로 옮기느냐다. usb나 sd카드로 변환이 안 되는 이 애물단지를 파일로 만들기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많은 검색으로 찾아본 결론은 결국 세 가지.

첫째, 요즘 나오는 노트북과 데스크톱으로는 바로 컴퓨터에 녹화할 수 없다.

둘째, DV단자를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는 IEEE 1394 케이블과 그것을 데스크톱에 연결할 수 있는 랜카드가 필요하다.

셋째, 프리미어로 영상 녹화를 떠야 한다. 한 시간 녹화면 한 시간.. 두 시간 녹화면 두 시간..


데크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업체에나 있고 더 이상 부품도 생산되지 않아서 찾아도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격도 알아봤는데 40,50만 원 선이니 뭐. 돈 없는 나에겐 말이 안 된다. 


망연자실되어있던 차에 영상 전공하던 친척 오빠로부터 한 줄기 빛을 얻었다. 충무로 역 안에 있는 오! 재미 동이라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이 오늘 내가 이 글을 쓴 이유기도 하다. 혹여나 나같이 기계치인 사람이 저장한 추억을 열지 못해 고생할까 봐.. 여기 가세요..

편집실 개꿀

일단 좋은 점은 여기 직원분들이 너무나도 친절하다.

검색만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부딛히자는 마음으로 카메라 덜렁 들고 들어갔는데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셨다. 그니까 뭐든 경험해봐야 한다. 검색 백날 해봤자.. 어휴.


그리고 데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데크 덕을 보지 못했다. 영상을 틀을 때마다 노이즈가 심하게 발생했다. 그래서 그냥 dv단자를 연결했다. 사실 이 두 가지의 영상 퀄리티 차이는 크지 않으나 dv단자로 연결했을 때 컴퓨터와 연결이 끊길 가능성이 더 커서 보통 데크를 선호한다고 직원분이 내 질문에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나머지는 간단하다. 프리미어 키고, 캡처 누르고 연결 확인하고 녹화 뜨면 된다. 



여기서 나의 멍청한 짓이 드러난다. 나름 영상을 끊어서 보관한답시고 중간중간 녹화를 끊고 다시 녹화하고 해서 파일이 여러 개 생겼다. 그중에 한 영상이 거의 30분 정도 되었는데 용량을 보니 거의 7기가였다. 

어차피 sd 카드 내의 용량은 10기가 정도 아직 남아있으니까..! 되겠지 하고 옮기려는데 

아니.. 남아있대매..

그래서 남은 영상을 또 잘라내고 잘라내고 오조억 번 잘라냈다. 영상이 기니 한 시간 걸릴 거를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차마 못 옮긴 영상은 다음에 다시 녹화 뜨자 하고 씁쓸히 나가려는데 직원분의 말씀

"어? 한 번에 녹화 안 하셨어요?"

"아.. 이게 sd 카드의 용량은 남았는데 못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거. 아이고 이거 모르시는 분 은근히 많네요."


제가 뭘 모르는거죠..?

아래는 직원분의 설명을 고대로 입력한 나의 뇌피셜이다.

원래 과거에는 3기가 이상의 파일을 전송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usb도 그래서 3기가 정도로만 많이 나왔고. sd 카드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초기 설정값이 3기가 이상의 파일은 전송할 수 없게끔.. 해놓는다고..

마우스 우클릭으로 sd카드의 파일 시스템을 확인했더니 FAT, 즉 3기가 이상의 파일은 전송 못하는 설정값이었다. 그걸 exFAT로 바꾸면 6기가든 10기가든 보낼 수 있다. 물론 안에 있던 파일 전부 포맷하고 나서.. ^^


.. sd카드고 뭐고 그냥 돈 더 주고 하드웨어 사자.



어쨌든 예약한 2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는 4시간을 쓰고야 말았지만 오재미동의 자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단 뒤에 예약자가 없으면 계속 써도 된다고 해주셔서 쫄리지 않고 끝까지 녹화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예약은 미리 해야 하는데 만약 하지 못하고 갈 경우에는 시간 비용이 두배로 든다. 이천 원에서 사천 원. 그래도 싸지 않음? 사랑입니다. 그리고 현금이나 계좌이체로만 가능하고 특정 장비 사용 시에는 미리 연락드려야 한다. 나 여기 직원 같다. 


밖을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하하.. 아날로그.. 몰까.. 

그래도 친구들이랑 가족들한테 녹화물 보여줬더니 엄청 좋아해 줬다. 예상보다 더 재밌어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한 김에 끝까지, 이 영상들로 재미나게 편집까지 해보려고 한다. 내일도 들고나가야지..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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