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간도 죽는 순간까지 완성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할 때 나를 조금이라도 잘 짓기 위한 공부는 ‘아직 살아 있는 자‘의 당연한 과제가 아닐까요. (p.19)
작년 초, 홍세화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늦게나마 한겨레에 실린 마지막 칼럼을 읽었다. 칠순을 훌쩍 넘기신 분이 쓰신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글이었다. 투병을 앞두고 쓰신 글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도 글에서는 올곧음과 혈기가 느껴졌다. 깨어 있으라고 호소하셨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써 내려간 ‘인생을 뒤돌아보니(말줄임표)'같은 느낌이 아난 현재 진행형의 글이었다. 늙어간 사람이 아닌 깊어진 사람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홍세화의 공부≫는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천정환 교수와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선생님의 인터뷰 대담집이다.
홍세화 선생님은 20대에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로 망명한다. 망명 후에 생계를 위해 택시기사로 일 하며 쓴 책이 ≪빠리의 택시운전사≫다.
그 책이 유명해지고 이름을 알린 이후부터 내가 읽었던 한겨레 마지막 칼럼까지. 즉,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꾸준히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 오셨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멈추지 않으셨다.
≪홍세화의 공부≫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홍세화 선생님이 평생 지어 오신 공부에 대한 의미를 탐색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나이 듦, 정치경제학,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 민주주의, 진보정치, 인문학, 마음공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주제인 '공부'는 대중에게 익숙한 '공부'와는 거리가 있다. 두 지식인은 우리가 잘 살기 위해에서는 인문학과 철학, 사회 과학, 홍세화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사람 공부' '세상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이 곧 상품이 되는 것이 정상처럼 보이는 비정상 '공부'에 일침을 놓는 반항적 메시지가 가득 담겨있다.
제게 공부는 우선 ‘나를 잘 짓기 위한 끝없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말 중에 ‘짓다’라는 동사는 흥미롭습니다.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습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 모두가 ‘짓다’의 목적어가 됩니다. 잘 지어서 공동체 구성원 중 단 한 사람에게도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 한 번 태어나 되돌릴 수 없는 내 삶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나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 p.19
홍세화 선생에게 '공부'란 '내 삶을 잘 짓기 위한 일'이자 '이기적이거나 나르시시즘과는 다른 차원의 자기애의 반영(p.19)'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p.19)'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 시스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체로 다시는 '공부'의 '공'자도 듣기 싫은 사람을 배출한다. 내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내 아이 세대까지 형태와 강도는 달라졌어도 최종 결과가 '공부 싫어'임은 변함이 없다. 이쯤 되니 이거, 사람들을 공부에서 멀어지게 해서 손쉽게 컨트롤하려는 거대 음모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우리 사회가 극 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국뽕'을 품을 수 있는 상황까지 빠르게 온 데는 대중을 선동하는 전체주의적 통치 방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대가가 무수히 많은 피와 땀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의 따뜻한 잠자리가 아주 비싼 값을 치른 자리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시점에 기존의 방식을 고수해도 괜찮을 까 하는 물음에 그 사람들은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응원봉을 들고 모여들여 '아니'라고 답한다.
갈길이 멀지만, 우리의 '공부'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야할지 가야 할 방향은 제시가 되어 있는 게 아닐까.
결국은 정신이나 몸이나 긴장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요? 긴장 없이 늘어지지 말고, 힘들 때도 누워 있지 말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엉덩이를 들자"하는 긴장. 그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나이가 들면 자꾸만 지난 얘기를 한다고 하잖아요. 장래의 얘기는 할 게 없으니까. 그래서도 변화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고 엉덩이를 들어야 합니다. - p.81
저자는 무려 살림을 할 줄 아는 70대 한국인 할아버지였다. 노부부 중 아내가 긴 여행을 떠나면 떠나는 당사자나 남아 있는 남편이나 걱정이 된다. 혹시 집에 남아있는 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내 밥은?'이라는 물음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쪽이나 섬찟하다.
하지만 홍세화 선생님은 인터뷰이였던 천정환 교수가 집에 찾아오자 직접 장을 봐 온 재료로 요리하고 직접 담근 인삼주를 꺼내 대접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익숙해 보인다. 책이 쓰인 시점을 감안하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을 때이다.
본인의 의식주를 단정하게 챙길 줄 아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신뢰와 당당함이 있다. 이런 모습이 저자가 70대 '노인'이 아니라 70대 '지식인'으로 보이게 하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홍세화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우리나라에 수입해 온 개념 ‘똘레랑스'는 "다른 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목숨을 다해 지키겠다." (p.61)는 의미이다. 즉 타자에 대한 관용. 인정. 고유한 개인에 대해 존중을 의미한다.
이 문구를 보고 우리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관용어구가 떠올라 씁쓸했다.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이 문구는 '나는 당신과 대화나 토론할 의지가 없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들을 생각이 없으니,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이 '똘레랑스'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곱씹어본다.
똘레랑스, 즉 타인의 존재와 생각을 인정하는 것 내 존재와 생각의 부정으로 연결하지 않는 것, 서로 '생각이 다를 때 그걸 드러내고 대화와 토론을 해서 모아갈 수 있는(p.91)' 능력, 생각의 교류를 당연시하고 더 나아가 '권리'라고 여기는 풍조가 어떻게 하면 자리 잡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유의 훈련이나 성찰의 습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끝없이 겸손하게 자기 생각이나 위치를 성찰하고 회의해야 하는데, 그럴 줄 모르니까 고집이 세지고 공격적이 되고,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서로의 생각을 겸손하게 모아 갈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거죠. - p.91
결국 다시 교육이고, '공부'다. 홍세화 선생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공부'의 방향을 다시 한번 짚어주신다.
대부분 먹고사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열심히 살아도 불안한 상황이니 '똘레랑스'라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의견에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섞고 정리해서 더 나은 결론을 내기 위해 토론하고 성찰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습관화된 삶이 재테크라고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다소 거친 비유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없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 '워런 버핏'이 상상이 되는가. 자기 생각보다 경제 인플루언서의 생각을 우월하다고 믿고 비판의식 없이 따르다가 돈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성찰하는 능력과 서로의 생각을 성숙하게 다루는 문화는 우리의 이익과도 관계가 있다. 즉, 먹고사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나, 이번에 미국 들어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요. 특히 학계도 그렇고 언론도 마찬가지지요. 중국이나 러시아에 가면서 '들어간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무의식 중에 미국이 자기 나라라는 걸 드러낸 셈이지요. 중국의 부상 등 지정학, 지경학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급변하는데 미국 중심 시각에 머문 사람들이 한국 사화를 계속 지배하는데서 오는 지체의 문제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를 옭아맬 위험이 있습니다. - p.127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 껴 있는 조그마한 나라, 전쟁 후 휴전 상태인 나라, 핵무기를 머리 위에 지고 있는 나라, 가진 거라고는 산과 사람이 전부인 나라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외교'의 실책들이 쌓이면 백성들을 노예로 공납해야 했고 전쟁으로 온 나라가 불타 올라야 했고 치욕과 설움을 겪었다는 걸 경험했다.
중요한 선택 굽이굽이마다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집단 지성의 힘뿐이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현명해야 한다.
미국 등 강대국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약육강식이 관철되는 국제 사회에 대한 비판, 금융자본주의 체제와 세계화가 잉태한 문제들, 성장주의와 기후문제 등 오늘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바란다면 디플로를 읽으라고요. 프랑스에서 나오는 국제 관계 월간지이니만큼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우리와 먼 지역을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는, 우리로선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만큼 프랑스가 미중러일이라는 우리의 주변 4 강국들과 등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 p. 127
저자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중러일' 강대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큰 나라들과는 다른 전략과 접근을 취해야 한다. 미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들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안위에는 0.1도 관심이 없다. 오직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자국의 이익에 활용하는 방법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 점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어떤 나라와도 '적대적'관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니 다양한 상황에서 작은 나라들이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해 가는지에 대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진다.
외교에서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 중 누군가가 나의 대변인이 되어 그 일을 한다.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가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이 내리는 결정엔 내가 내가 낸 세금이 고스란히 다 들어간다. 결국 그 사람들이 나의 10년 뒤, 30년 뒤 삶, 내 아이들의 노년의 편안함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책을 완독 해내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철학, 정치, 사상에는 아는 바가 거의 없으니 두 지식인의 대화의 흐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멋진 할아버지에게 멋짐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책을 붙들고 끝까지 완독해 냈다. 어려운 숙제를 잔뜩 받아 들었지만 내가 배워야 할 게 이렇게나 많다는 발견이 싫지 않다. 숙제를 잔뜩 받아 들었지만 신이 난 아이가 된 기분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통해 '나를 짓는 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면 기쁜 일이 되겠다. - p.205
선생님, 성공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