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해진 철학자들
5월 3주 베스트셀러 소개합니다.
25년 5월 12일 ~ 5월 18일
알라딘, 예스 24와 교보문고(온라인)의
주간 베스트셀러 살펴봅니다.
수험서, 문제집,
시리즈물(예: 흔한 남매 19)은 제외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베스트 셀러 상위에는
여전히 정치관력 서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유지가 되겠죠?
이번 주에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신간이 없어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철학 교양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우려되는
언제부터인가
니체
쇼펜하우어
부처
등등
철학자들의 이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초역 부처의 말』처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책들도 있지요.
이런 흐름은 철학이 어렵고
권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대중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어려운 이유가 있고,
어려워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인지라
조금은 걱정도 됩니다.
니체,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저자명으로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철학자의 말과 글을
엮은이(또는 작가)가
편집 및 재구성한 2차 저작물입니다.
저작권법 제5조(2차적 저작물)
①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하 "2차적 저작물"이라 한다)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② 2차적 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
저자: 쇼펜하우어
출판 : 하이스트
발매 : 2024.02.20.
위버멘쉬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
출판: 떠오름(RISE)
발매: 2025.03.14.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철학자의 이름이나 사상이 들어간
두 권의 책입니다.
2차 저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명에
'쇼펜하우어', '니체'가
들어간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지
의문이긴 합니다.
소비자들이
'니체', '쇼펜하우어'의 문장을
번역한 책이라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으니까요.
미움받을 용기(20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저자: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출판 : 인플루엔셜
발매 : 2022.12.28.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도
저자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아들러의 심리학을 토대로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2차 저작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부가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원전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초역 부처의 말
저자 : 코이케 류노스케
출판 : 포레스트북스
발매 : 2024.05.30.
『초역 부처의 말』 역시
일본 작가의 편역서로
2차 저작물입니다.
가벼운 입문서로 접근하기 좋지만
원작을 온전히 담은 책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랑할만한 말은 아니지만
저는 저명한 철학자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습니다.
어려우니까요
@.@
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책 한 권은
완독 했습니다.
"1권 읽은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라고 하죠.
제가 그 위험한 사람이며,
지금은 말 그래도 글자를 읽어낸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 의견을 쓰기보다는
한나 아렌트가
영향력 있는 사상가의 말이
왜곡된 채 널리 퍼질 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쓴 부분을 남겨봅니다.
모든 사람이 놀랍게도 아이히만은
정언명법에 대한 거의 정확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칸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가 말하려 한 것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 법의 원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질문에 대해
그는 칸트의『실천이성비판』을
읽었노라고 대답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210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다고 말한 아이히만.
하지만 아렌트는 말합니다:
칸트는 분명히 이런 종류의
어떤 것도 말할 의도를 갖지 않았다.
반대로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행위를 시작하는 순간 입법자이다.
인간이 자신의 '실천이성'을 사용하여
법의 원칙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원칙들을 발견한다.
(...)
인간은 법에 대한 복종 이상을 행해야 한다는 요구,
단순한 복종의 요구를 넘어서서
법의 배후에 있는 원리(법이 발생하는 원천)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요구뿐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210
칸트의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아이히만은
'법을 준수하는 자'가 아니라
'법을 제정하는 자처럼 행동하라'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관념은 아이히만뿐 아니라
"독일에서는 아주 일반화된 이상한 관념"
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이히만은
그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현재 핀란드 전체 국민수와 비슷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학살하는데
가담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치의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란 사태를 겪고 나서는
저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의 일일 수 있겠다."
누구나 고급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진짜인지 의심하고 검증하는 일은
우리 각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정보의 자유를 누리를 댓가겠지요.
위에서 언급한 철학 교양서들은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베스트셀러가 된 만큼
그 책임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 계발서의
다른 형태는 아닐까
목차만 살펴보면
OOO 해야 한다.
OOO 해라.
OOO이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단정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누가 이렇게 해라,
하고 알려주면
나는 그대로 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곤 합니다.
그래서 OOO 해야 한다.
OOO 해라.
OOO이다.
라는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 해 지기도 하죠.
하지만
도널드 L 핀켈 교수는
저서 『침묵으로 가르치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자기를 통제할 수 있으려면
우선 우월한 존재에게 통제당하고
보살핌을 바도 깊어하는 내밀한 욕구를 자각해야 한다."
- 『침묵으로 가르치기』 p.232
우리에게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탓에,
'의존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하라는 대로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참 편합니다.
쭉 그렇게 누군가 하라는 대로 하며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한해 한해 갈수록
내 삶이 온전히 내 책임이 되어가고
확신을 주는 사람도, 상황도 사라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죠.
그래서 우리는 저명한 철학자의
지시문, 명령문에서
안정감을 찾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을 간파한 사람들은
지시와 명령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책들을
발간해 내고요.
지시와 명령과 단정이 담긴 목차 하나에
대략 천자를 넘지 않는 글이
담겨있고
전체 책 페이지 수는
300페이지를 넘지 않습니다.
엮은이들이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는 원저는
600, 700페이지가 넘습니다.
철학자들은
목차에 나와 있는 한 줄을 끌어내기 위해
어렵고 무겁지만
긴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책에 담겨 있겠죠.
그 힘든 과정,
누군가가
가볍게 줄여서 입에 쏙 넣기 좋게
편집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잘 읽히는 책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하지만 읽고 난 뒤에는,
그 책에 담긴 저자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쇼펜하우어가 진짜 이런 의미로 이야기했을까?
니체가 이런 의미를 담은 게 맞을까?
특히 저명한 철학자의 이름이 등장할수록
그 권위에 주눅 들어
'진리이겠지'하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기 쉽습니다.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이어가다 보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끝내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했던
아이히만의 모습과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25.05.12 ~ 05.18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