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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규 Dec 26. 2016

만약 구원자가 이미 왔었다면...

깨달음과 믿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같은 뿌리라구요?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은 "그럴껄?" 이라고 긍정의 답변을 할 것이다. 

세 종교는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섬기고, 이들이 말하는 ‘신’은 언어만 다를 뿐 모두 ‘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게다가 최후의 심판이나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개념도 똑같다고 한다. (나는 종교학자나 종교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위에 대한 주장은 종교인들 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하는 수준에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어떻게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가 그렇게 수백년 간 여전히 서로가 싸우고 있는 것 일까?

위 세가지 종교는 모두 사랑, 부활과 영생, 인간으로 온 메시자, 희생정신의 상징 그 자체로서 모두가 완벽한 성스러운 종교적 가치를 공유한다.

다만,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슬람교는 마호메드를 메시아로, 유대교는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행적이 담긴 신약성서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세 종교는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고 하겠지만, 이것이 싸울 만한 이유인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친다.

과연 인간은 진정한 구원자를 만난 순간, 그 구원자를 진심으로 알아 볼 수나 있을까?

시답지 않은 유머가 생각난다.

신을 진심으로 믿고, 숭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이없게도 길을 걷다 깊은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지.

신심 깊은 그는 기도를 한다 "신이시여 구원하소서." 청년들이 지나가다 이 목소리를 듣고, 묻는다.."다치지 않으셨나요? 잠깐 기다리시면 저희가 꺼내드리겠습니다.", 그는 대답한다. "아니 괜찬습니다. 곧 신께서 저를 구하러 오실 겁니다.", 청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던 길을 간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이번에는 군대가 그 곳을 지나다 그 사람을 발견한다.. 그 사람은 똑같이 "괜찮습니다. 곧 신께서 저를 구하실 것 입니다." 군대의 지휘자 역시 고개를 갸웃 거리며 지나 간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은 웅덩이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다 그만 죽고 만다. 영혼이 된 그 사람은 신의 심판대에 서게 되고, 신께 원망한다. "신이여,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그러자 신은 말씀하신다. "내가 청년과 군대를 보냈는데, 넌 어찌 이 도움을 거절하였는가?"


참, 시덥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유머다.

과연, 우리는 구원자를 만나면 알아 볼 수나 있을까?

불교를 믿었던 인도의 아소카왕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가장 평화로운 종교라는 불교 신자다운 말이다.

첫째,  무엇을 믿든 존중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세째,  다른 사람의 종교는 존중해야 한다.
네째,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종교를 높일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이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기 종교를 해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종교도 해치게 된다.

만약 누군가 자기 종교를 영광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종교를 비하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종교를 해치는 것이다.              


예수를 박해한 것도, 유대교의 지도자들이고, 이슬람교를 박해한 것 역시 종교적 지도자들이었다는 것을.. 

어쩌면 모든 종교의 수장(혹은 종교를 배경으로 한 정치세력들)들은 신(구원자)이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민중 속에서, 민중으로 부터  구원자가 오는 것, 신이 오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자존심이 시련을 겪어 더욱 오만해지거나 자학 증세를 보이는 것과 같이, 그들은 자기모순 상태에 빠지는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께서도 "깨어 있으라"라고 하셨듯이..

구원자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실천하면서 깨어있는 것이 구원자를 만났을 때 진심으로 그 분을 알아 볼 수 있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진정한 구원자를 이미 만났음에도...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그 구원자의 깊은 사랑과 슬픔을 깨닫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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