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 뉴욕 여정에서 배운 것
한국에선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신호등을 지켰다. 뉴욕에선 달랐다. 많은 사람이 무단횡단을 했다. 차만 오지 않으면 성큼성큼 길을 건넜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곳에선 그게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여정 말미에는 나 역시 습관처럼 무단횡단을 했다. 환경이 달라지니 나도 바뀌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 이틀간 다양한 경험을 했다.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근사한 스냅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이 안 터져 길에서 헤맸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거대한 공룡 뼈를 봤고, 센트럴 파크를 미친 듯이 걸었다. 지하철에서 엠프까지 들고 다니며 신청곡을 받는 연주가를 봤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 한복판에서 거추장스러운 바지를 자연스럽게 벗는 사람이 인상적이었고(운동복 안에 운동복 차림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다리가 아플 정도로 컸다. 타임스퀘어에서 리듬을 탔고, 칵테일도 연달아 세 잔씩 마시면 취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별을 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지던 시기가 있었다. 감성에 젖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노래를 듣지 않았다. 좋아하던 드라마도 잠시 끊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 구구절절 늘어놓던 이별담도 ‘성격 차이’로 요약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어디서든 잘 살길 바란다.
이번 뉴욕 여정은 커리어, 자아 성찰, 연애 등 다방면에서 성장하는 기회가 됐다. 서울과 뉴욕에서 신호등 지키는 법이 다르듯 사람마다 나름의 규칙과 개성이 있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여유,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는 유연함을 배웠다. 내가 만든 규칙이 나를 옭아매지는 않는지 이따금 들여다보기로 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체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찬찬히 성장하면 된다.
곧 마닐라와 방콕 출장을 앞두고 있다. 필리핀도, 태국도 처음이다. 차근차근 기록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