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를 모르니 자유로웠다
아침 7시 호텔 셔틀을 타고 마닐라 공항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비행기가 한참 지연됐다. 기다리면서 방콕에 있는 NFT 작가님과 인터뷰 일정을 조율했다. 노트북을 켜고 사전질문지를 작성하는데, 커리어우먼이 된 기분이었다. 이미 커리어우먼인데 커리어우먼이 된 기분은 무엇인가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냥 뿌듯해하기로 했다. 잠을 거의 못 자서 피곤했지만 견딜만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출발했다. 방콕에 다다를 즈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모양의 구름을 발견했다. 괜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두근거렸다.
수완나품 공항은 깨끗하고 컸다. 그간 가본 공항 중에 인천공항 다음으로 좋았다. 입국 수속을 하고, 캐리어를 찾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밖으로 나오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반겼다. 그랩을 불러 호텔로 향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약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창 밖으로 본 방콕의 첫인상은 깔끔한 느낌이었다. 귀국할 때까지도 첫인상은 바뀌지 않았다. 다음에 꼭 방콕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4가지로 요약된다.
1. 태국어를 전혀 모른다
어디를 가도 모르는 말 투성이었다. 간판을 봐도 무슨 글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토록 이국적인 느낌은 예전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늘 문자를 접하고 살다 보니 가끔은 피로하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읽게 된다. 그런데 해당 국가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곳으로 떠나면 이러한 피로감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그 자유로움이 좋다.
2. 친절하다
내가 마주한 태국 분들은 다 친절했다. 서두에 등장한 NFT 작가님은 부업으로 하신다며 타로 점을 봐주셨다. (타로 점 결과는 비밀이다.) 마지막에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의 그랩 운전사도 기억에 남는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약 20분을 기다렸는데 그분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탑승 수속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당시 나는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새로 그랩을 잡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바로 운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로 갔느냐, 나는 당신 차를 봤는데 왜 그냥 지나쳤냐, 이쪽으로 다시 올 수 있느냐 등 내용으로 항의했다. 그는 영어를 못하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곧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본인이 있는 장소를 찍어 전송한 것이다. 길치이지만 초인적(?) 힘을 발휘해 차량을 찾을 수 있었다. 운전사는 “하이웨이, 오케이?”라고 묻고선 별말 없이 운전을 했다. 화를 냈던 나도 괜히 머쓱해졌다. 생각해보면 그도 나를 찾지 못해서 답답했을 것이다. 좀 더 차분히 이야기할 걸 후회가 들면서 마지막에 내릴 때는 진심으로 “땡큐! 해브 어 나이스 이브닝!”를 외쳤다.
3. 안전하다
혼자 다니는 걸 잘하지만 잘 못한다. 해외에 혼자 나가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는 걸 원칙으로 한다. 동성 친구들과 인도, 멕시코, 쿠바 배낭여행을 갔을 때도 되도록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방콕에서는 밤 8시까지(?) 돌아다녔다. 어두컴컴한 시각에 다닌 건 처음이었다. 낮에도 걸어 다닐 때 비교적 마음이 편했다. 횡단보도에 신호등 없는 곳이 많아서 길을 건널 때는 조금 무섭긴 했다. 이 점만 제외한다면 방콕은 안전하고 깨끗한 곳이다. 뉴욕과 달리 어디서든 인터넷이 잘 터진다는 점도 좋다.
4. 가볼 곳이 많다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느라 방콕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이 꽤 많다. 다음에 꼭 느긋하게 방문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