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같아도 대상이 달라지는 오묘한 현상에 대하여-.
여느 마케터 전문가들처럼 정확한 포지셔닝과 소비자의 구매 패턴, 트렌드를 파악해서 소비자들에게
접근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대학교 교양 과목의 교재에나 실릴 법한 뻔한 말보다 실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그런 접근이
더 흥미롭지 않겠는가 하여 이번 페이지를 열어볼까 한다.
타이틀 그대로 '누구를' 위한 영상인가? 라는 물음 속에서 '누구'라는 것은 그 대상이 콘텐츠에 노출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 완성된 결과물로 나오기 전의 시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눈과 귀에 닿기 전에 거쳐야 할 수문장(守門將)들, 우리들 사이에선 그것을 컨펌(Confirm)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러든 저러든 영상콘텐츠의 대부분은 홍보의 수단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업의 브랜드,
혹은 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널리 알릴 것이냐가 주 목적이 될 테지만
그 목적을 향해 뛰는 방향이 같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제작사는 프로젝트를 접하면 앞으로 우리가 만들 결과물을 소비할 대상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2030 여성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화장품의 새로운 브랜드 영상이라고 한다면 2030 여성이 어떤
채널로 영상콘텐츠를 소비하고 기존의 브랜드 중에서 어느 것을 선호하며 비슷한 경쟁사가 어떻게 시장을
선점했는지 등 다방면으로 분석이 들어간다. (프로덕션의 구조 상 기획 단계를 제외한 곳도 있다.)
물론 이러한 마케팅 전략과 기획의 과정은 클라이언트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클라이언트 측에서 먼저
기획과 마케팅의 관리까지 제작사에 맡기는 경우도 (굉장히 많이) 있기에 어디까지가 클라이언트의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제작사의 역할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여튼, 앞서 말한대로 대상을 면밀하게 타게팅하여 콘텐츠의 구성을 갖추고 내용을 제안했을 때
단번에 컨펌이 나면 그대로 진행을 하면 되고,
클라이언트 측에서 의견을 제안하면 그 내용을 받아들여 다시 가다듬은 뒤 컨펌을 받아내면 된다.
말로는 참 쉬운 이야기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기획에 정답은 없다. 기획의 단계에서 같은 내용을 고민하고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은 매 프로젝트때마다 겪는 일이다. 이 단계는 양측의 합의의며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슈는 항상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있다. 클라이언트와 제작사가 같이 합을 맞추어 기획안을 완성했다 할지라도
프로젝트가 순탄하게 흘러갈 확률은 적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자.
[클라이언트 측 담당자 K모씨의 시점]
큰일이 났다. 다음주면 SNS에 광고를 올려야 하는데 사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 세련된 콘셉으로
광고를 만드려다 보니 외국인 모델도 쓰고 힘도 제대로 줬는데.. 그랬는데..
사장님이 영상 마지막에 "회원가입하면 포인트가 두배라구?!"라는 멘트를 하며 놀란 표정을 넣자고 하신다.
제작사 측에서 처음 기획안에 없던 내용이니 모델을 다시 섭외하고 재촬영하려면 추가 금액이
붙는다고 해서 골치가 아프다. 예산도 최대한 땡긴건데...
중요한건 추가금액을 지불해서라도 넣겠다고 하니까 제작사 측 대표님이 사장님 의견에
토를 단 모양이다.
내내 요염한 분위기를 잡던 외국인 모델이 갑자기 그 말을 왜 하는지 도통 모르겠단 것이었다.
사장님은 광고쟁이들이 개뿔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화가 단단히 나셨는지
업체를 바꾸네마네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상황은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그 어딘가에서 충분히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이다.
물론 반전에서 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느 판단이 좋은 판단인가 판가름하기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페이지의 타이틀처럼 "누구를 위한 영상인가?"라는 부분에 있다.
처음엔 클라이언트든 제작사든 공통의 대상을 정해두고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그 고민을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간에 녹여 열심히 결과물을 만든다. 2030 여성들을 주 고객층으로 삼은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 분명히 목적은 같지만 컨펌의 과정에서 이미 영상을 소비하는 대상의 순서가 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갈등이 교차하는 곳에는 항상 비슷한 형태의 물음이 툭 하고 떨어진다.
과연 앞으로 우리가 만들 이 영상은 클라이언트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고객들을 위한 영상인가,
그렇게 사장님이 뒤집은 판이 꼭 나쁜 결과로만 흘러갈 것이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사장님이 제작사보다 타겟 분석을 더 면밀하게 했을 수도 있고 영상의 퀄리티하고는 상관없이
포인트 두 배 혜택에 초점이 맞춰서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게 통한다고?"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때도 있지 않은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영상제작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클라이언트 분들과 의견을 나누는 팀원들, 혹은 직장
상사를 보며 스스로에게 각인시킨 한 줄은 바로 이것이다.
나의 의견을 참견으로 만들지 말자.
광고주(클라이언트)의 엉뚱한 요구를 막기 위해 의견을 낼 수 있다.
제작자로서 콘텐츠의 흐름이 깨지는 걸 방관하면 안되지만 그 의견을 냈을 때 만약 그 진심이 닿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객들에게 통하는 영상 이전에 광고주에게 통하는 영상을 만들기로 마음을 돌려야 한다.
제작사가 열심히 설득한 뒤에도 의견이 수용되지 않았을 때에는 더 이상 제작사의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
참견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선 과감히 방향을 틀어야 할 때도 있다.
제작자의 숙명인 '소비자와 광고주 모두를 만족시키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광고주의 제품 혹은 서비스를 노출시켰을 때 지갑을 열어 그것을 소비하는 쪽은
엄연히 소비자이지만 그 콘텐츠를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의 판단은 광고주가 내린다.
그렇기에 기획된 내용 이후의 개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제작자는 "아니 여기서 그걸..?"이라는 말과 함께
혼돈에 빠지기 십상이다.
가끔 창작욕에 몰두한 제작자가 광고주의 의견을 둥글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 끝은
거의 대부분 좋지 않다. 우리는 그걸 창작욕이 불러온 착각이라고 한다.
명심하자.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그 마음은 알겠지만 제작자는 광고주가 아니다.
홍보물을 제작하는 동안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 정말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게끔 정성을 쏟는데
그건 광고주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시선에서 고민하고 몰두한다. 다만 그 관점과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왜 광고주가 개입한 의견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에 대한 내용을
치밀하게 설득하는 것, 만약 그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 시점에서 그대는 할 만큼 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런 사례는 광고주의 컨펌을 통과해야만 콘텐츠가 외부로 노출이 된다.
콘텐츠의 성공적인 소비와 반응은 뒤에 두고 볼 일이다. 소비자에게 통하는 방식을 생각하는 방향이
다를 뿐,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간이든 후반이든 기획의 방향이 급하게 틀어진 결과물은 그 품질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 품질의 차이는 향후 그 브랜드를 마주할 소비자에게 그대로 비춰지게 되고 그 결과는 얼마만큼의 소비자를
매료시켰는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성과'라는 지표로 마주하게 된다.
제작사의 브랜드 이미지는 제작자가 만든다. 무조건 예스맨의 자세가 옳고 그른가의 판가름은 뒤로 미뤄두자.
사업체든 프리랜서든 제작에 들인 시간과 거기에 들인 에너지가 온전한 보상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보상의 배경에는 제작을 믿고 맡긴 광고주의 만족도가 꽃처럼 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람직한 흐름이라는 것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기획에서 벗어난 요청은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항해중에
방향키를 확 틀어버린 광고주 탓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지나도 영상은 남는다. 그리고 누가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으로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지난 일이기에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저 이 결과물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왔는지가 중요한 점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광고주의 변덕을 반영하면서도 결과물의 톤앤매너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누구를 탓할 시간이 없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온갖 모진 풍파에도 광고주와 소비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 그것을 해내는게 우리들의 몫이다.
광고업계에 종사하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 본 Doyle Dane Bernbach(DDB)의
창립자, '윌리엄 빌 번벅'이 말했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물건을 팔 수 없다.
- bill bernbach,『bill bernbach said...』, DDB Needham Worldwide(1989)
소통이 원활한 광고주를 만나는 것은 운의 영역이다. 소통이 원활한 제작사를 만나는 것 역시 운의 영역이다.
소통에서 오는 의견의 수용은 대상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광고주를 신뢰하게 만드는 것 역시 제작사가
추구해야 할 자세이며 그 자세는 모두를 만족시킬 결과물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듣지 않는 사람에겐 물건을 팔 수 없다는 말처럼 '듣지 않는 광고주'에겐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팔 수 없다. '듣지 않는 제작사'는 그저 광고주에게 '다음에 같이 일하기 싫은 대상'으로 낙인 찍힐 뿐이다.
그렇게 시너지 없이 나온 결과물은 소비자에게 어떻게 비춰지겠는가?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가
고통을 겪는 고통의 산물, 그저 그것에 그치지 않을까.
이번 페이지에선 정말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클라이언트(광고주)와의 소통에서 필요한 마음 가짐에 대해
짚어 보았다. 콘텐츠를 소비할 소비자들에게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이전에 광고주에게 먼저 통해야 한다.
근데 꽤 많은 제작자들이 이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사람들이 "오, 이거 잘만들었는데?"하고 어디서 만들었나 알아봤을 때, 혹은 누군가에게 물어봤을 때
그것이 우리가 만든 것(포트폴리오)이라면 그것만큼 좋은 영업 수단이 없다.
이미 실력은 인정받았고 그로 인한 신뢰는 구축되었다. 어쩌면 결론은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될 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비디오그래퍼라면 사람들이 광고주의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게,
허황된 거짓 없이, 간결하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 몰입에 빠져 광고주를 가끔 적대시하는 제작자들을 많이 봐 왔다. 어제의 오만이 내일의 후회로
다가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잘 만들고 싶다면 설득하고 또 포용하자. 그게 우리가 올라야 할 첫 번째 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