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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눈꽃 Sep 18. 2021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장래희망을 고르기 힘들다면

'부캐의 역습' 부캐는 여러 개여도 괜찮잖아요.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뭐였어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힘든 사람이 있을까?


내가 그랬다. 왜냐면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아이였다. 학교를 졸업한 지가 좀 되어서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학기 초에는 '장래희망'을 쓰는 란이 있었다. 보통 본인이 되고 싶은 걸 적고,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을 나란히 적게 되어 있었다. 시골 출신 가난한 집에서 출세하는 길은 오로지 '사법고시'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주로 '사'자 들어가는 법조인을 바라셨다. 그게 아니면 선생님이나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그걸 보고 얼마나 웃으셨을까 싶다. 자녀의 성적과 적성은 안중에도 없으시고, 정말 바라는 걸 적으셨던 것 같다. 지니의 램프에 대고 소원을 비는 게 더 빠르셨을지도 모른다. 의사, 간호사까지 정말 다양한 걸로 바라셨지만,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게 부모님이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나조차도 하나의 직업이 우직하게 적히는 건 아니었다. 매년 꿈은 바뀌었다. 1년에도 수십 번씩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이거 재미있을 것 같은데?
뭘 하면 질리지 않고 평생 할 수 있을까?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하나의 직장에 들어가거나 직업을 가지면 계속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다양한 경험은 이런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의 선택을 좀 더 쉬이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부모님 덕에 그런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집에 있는 책, TV, 컴퓨터가 전부였다. 그래서 난 책이나 TV를 통해서 세상을 배웠다.


책이나 TV 속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이 항상 많았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직업들을 통해서 그 직장을 상상했고, 책을 읽고 감동하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고스란히 매년 장래희망란에 적혔다. 이제 서른이 넘었지만 난 여전히 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게 많다. 지금 하는 일이 5년 뒤, 10년 뒤에도 하고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나만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자꾸만 번듯한 직장을 두고도 다른 곳으로 레이더가 돌아가는 내 성격이 단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캐의 역습' 비로소 부캐의 시대가 열렸다.


실은 10년도 전에 나온 개념이다. 게임상에서 하나의 계정을 하고 고렙까지 키워두고 난 후에 다시 새로운 계정을 하나 파서 다시 처음부터 키우던 계정을 '부계(부계정)' 혹은 '부캐(부캐릭터)'라고 부르곤 했다. 이제 막 가입한 초급 레벨과 게임을 하는 데 너무 잘하면 '부캐'냐고 물으며 의심했다.


물론 본캐가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후에야 부캐도 주목받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지금은 꼭 그래야 하나? 요즘은 일반인들도 여러 가지 부캐를 갖고 살고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 후에는 유튜버로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고, 부업으로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책을 쓰는 작가님도 계신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진작 없어졌고, 평생 직업이라는 것도 다능인에게는 큰 매력이 없다. 예전과 달리 최근 들어 N잡이나 디지털노마드라는 형태로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한 명이 여러 가지 직업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이런 시대가 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보고 싶어 했던 다능인이라면 정말 꿈같은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뭘 해볼 것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능인이라면 충분히 생각해보면 좋겠다. 요즘은 작은 재능으로도 여러 플랫폼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전자책을 파는 일도 흔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만, 많은 일을 동시에 전부 할 수는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고 싶은 일부터 천천히 도전해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진입장벽이 낮으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성취감과 성공하는 기분을 만끽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어 보이면서도 비교적 쉬운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 일에 도전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직업이 되지 않더라도, 평소 배워보고 싶은 원데이 클래스가 있다면 바로 신청해서 경험해보자. 그냥 해봤다는 것 하나로도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


하지만 실패하게 된다고 해도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새롭게 도전하는 일 자체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그에 비하면 다능인에게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갖고 도전하는 일이 쉬운 사람이다. 이게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이 된다.


시도했던 일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또 다른 부캐를 만든다고 생각하자. 부캐들이 많아질수록 다양한 삶을 통해 인생이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하면 부캐가 많아지는 건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에 보류해두었던 캐릭터가 다시 살아나게 될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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