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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인 Apr 17. 2019

장기미제사건의 원인과 실태

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국내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는 1990년대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과 화성 연쇄살인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인 이형호 군 유괴·살해사건,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재조명된 2004년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범죄사건이 미제가 되는 경위와 미제사건 증가 원인과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 글은 아래 기사를 종합하여 구성하였습니다.


#1. 미제 범죄사건 현황


일반적으로 경찰은 살인·강도 등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의 경우 6개월 이상, 방화·강간 등은 3개월 이상 수사해서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3년 정도 수사를 진행한 이후, 미제 사건으로 편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6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 같은 미제편철 사건은 2010년 20만 6,647건(전체 사건의 12.68%), 2011년 21만 1,060건(13.59%), 2012년 25만 4,457건(15.58%)으로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살인·살인미수, 강도, 강간, 방화 등 주요 강력범죄의 경우엔 더 크게 늘고 있는 추세로, 2003년 강력범죄 미제 사건은 1,049건(5.1%)이었던 것에 반해 2012년 미제 사건은 4,401건(16.4%)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 같은 미제 사건들은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채 있다가 공소시효가 끝나게 되면 영구적인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2. 미제사건 해결의 어려움


장기미제사건이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되는 데는 공소시효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소시효 公訴時效

범죄를 저지른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검사가 법원에 특정 형사 사건의 재판을 청구하는 공소권이 없어져 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 

*출처: 표준국어사전


현장에서는 공소시효 만료일을 며칠 앞두고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는 등, 10년 이상이 된 미제사건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진술을 확보하면 활력을 받아 신속히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과거에 수집해놓았던 증거물을 재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증거 확보를 통한 범죄자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등 수사기관의 의지와 자원이 있다면 장기미제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찰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을 15년 만에 밝혀내고, 시신 없는 살인사건을 11년 만에, 석촌동 연쇄살인사건을 8년 만에 해결하는 등, 미제 사건을 꾸준히 파 해쳐 진상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담당 경찰들은 하나같이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오는 시간적 압박'을 사건 해결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고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장기미제사건을 다루는 인력의 부족 및 성과에 대한 압박 문제입니다. 


서울시의 장기미제사건을 담당하는 전담인력은 2015년 현재 11명으로, 수천 건의 미제사건을 다루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찰 수사의 경우 진급 등을 위해서는 성과를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해결된 수사만을 실적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한 사건을 오랜 시간 동안 추적하고 수사해야 하는 미제사건은 자연스럽게 미뤄지게 되고, 재수사 또한 쉽지 않게 됩니다. 


#3.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전 세계적으로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애초에 없었거나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없고, 영국은 경범죄에만 공소시효를 적용할 뿐 원칙적으로 공소시효가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은 2010년 살인과 강도살인 등 중대범죄 12개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영화 '도가니'의 모티브가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2011년 성폭력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간, 준강간 범죄는 공소시효가 폐지됐고, 2013년에는 강간 살인죄도 공소시효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15년)는 남아있었는데요, 1999년 5월 20일, 6살 어린이 태완이에게 황산을 뿌려 사망하게 한 사건이 2014년 7월 공소시효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서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태완이법 시행으로 그동안 있었던 모든 미제 살인사건이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용 대상을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범죄 중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범죄(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경우는 불포함)로 한정해, 2008년 8월 1일 오전 0시 이후 발생한 200여 건의 살인사건이 대상이 되고,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태완 군 사건은 태완이 법이 적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 실종된 지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바탕이 된 이형호(당시 9세) 유괴·살인사건 등 이른바 3대 미제사건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태완이법 이후 장기미제 사건을 다루는 절차]

경찰청은 지방경찰청에 편제된 '장기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인력을 2016년 상반기까지 기존 50명에서 72명으로 보강하기로 했으며, 살인사건 발생 후 다음과 같은 단계별 수사지침을 수립하였다.

◆ 미제사건 대응 

- 집중사체제 운영(발생∼1년) 
사건 발생 후 1년간은 수사본부를 꾸려 광역수사대, 과학수사팀 등 분야별 전문 수사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범인의 조기 검거에 나선다.

- 관할서 전담반 체제 운영(1∼5년)
1년이 지나도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사본부는 해체되고 경찰서 전담반이 수사를 맡는다.

- 지방청 미제전담팀 수사·관리(5년 초과)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나면 미제전담팀이 아예 관할 경찰서의 사건기록과 증거물을 넘겨받아 계속 수사를 진행한다. 

◆ 장기미제사건

- 이후 10년 이상 해결이 안 되면 추가 수사 여부를 심의한다. 수사의 진전이 없고 유력한 단서나 증거가 더는 발견되지 않고 앞으로도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장기미제 살인사건'으로 지정한다.

- 경찰은 장기미제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수사활동을 중지하고 사건 기록·증거물 관리·분석에 주력한다. 단 관련 증거나 첩보, 목격자 등 중요한 단서가 발견되면 언제든 수사를 재개한다.


 

#4. 미제사건 해결을 위한 접근법


미제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연한 첩보나 증언을 뒤늦게 수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발달된 과학수사의 응용'과 '의지'의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합니다. 


우연한 기회나 운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수사관의 힘으로 해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미제사건을 운에 맡기기보다는, 기술의 발달과 노력을 통해 객관적인 해결 확률을 높이게 되길 기대합니다.


다음은 이러한 주요한 두 요소가 상호작용을 하여 사건을 해결한 미제사건을 추려보았습니다.


① 18년 간 범인 사진 품고 다닌 막내 형사
 - '노원 주부 성폭행 살인 사건' - 

1998년 대낮인 오후 1시에 집에 혼자 있던 주부 A(당시 34세)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A 씨 남편의 체크카드로 151만 원을 뽑은 뒤 자취를 감췄다. 당시 도봉경찰서가 발칵 뒤집혀 형사·강력팀 전체가 투입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단서는 현장에 남은 범인의 DNA와 혈액형, 현금입출금기 폐쇄회로(CC) TV에 찍힌 범인의 흑백사진이 전부. 당시 막내로 투입된 김응희 경위도 선배 형사들 심부름하며 수사를 거들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5개월 뒤 인근 경찰서로 발령 나 사건에서 손을 뗐고, 수사본부도 2년여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해체됐다.

본부 해체 후 16년이 지나고 김응희 경위는 2016년 초 살인·강도 등 강력 사건을 전담하는 광역수사대 광역 1팀에 배치돼 이 사건에 매달렸다. 김 경위는 18년간 지갑에 꽂고 다닌 용의자의 CCTV 사진부터 꺼내 들었다. 범인이 당시 20대였다고 판단하고 1965년부터 1975년 사이 출생자 중 강력범죄 전과자를 동료와 함께 전수 조사해 8000여 명을 뽑았다. 이어 사진과 혈액형 등을 대조해 용의자 125명의 우선순위 10명을 정했다. 범인 오 씨는 세 번째였다. 초동수사 당시 오 씨는 성폭행 전과가 없어 용의 선상에서 제외됐었다. 

문제는 다음 단계였다. DNA를 대조해야 하는데, 구체적 혐의도 없이 DNA 채취를 요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경위는 오 씨가 사는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에서 오 씨가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검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말 국과수에서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김 경위는 "드디어 잡았다"며 함성을 질렀다. 김 경위는 오 씨를 구속시킨 후에야 지갑에 꽂고 다니던 용의자의 낡은 흑백사진을 버렸다. 


② 법의학자, 자신의 아들 정액으로 살인 혐의 밝히다
-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 

 2001년 2월 4일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유역에서 17살 여고생 박모양이 피살당했다. 발견 당시 박 양은 성폭행당한 채 알몸으로 강에 빠져 숨져 있었다. 사인은 익사였다. 박 양의 주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도 확보했고 주검에서 범인의 DNA까지 확보했으나,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가, 2012년에 DNA와 일치하는 인물을 추적, 마침내 용의자를 찾았다. 

그러나 용의자로 지목된 김 모 씨는 성폭행 혐의는 인정했지만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김 씨는 이미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김 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이 되는 듯했다

결국 용의자가 성폭행 직후 박 양을 살해했는지가 밝혀내려면 성관계 후 얼마 만에 사망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피해자가 성관계 후 바로 죽었다면 김 씨가 피의자인 게 확실해지는 상황이었다. 광주지검은 국내 1세대 법의학자 이정빈 씨에게 이 부분을 의뢰했다. 이 교수는 사건 당시 수사관이 채취한 거즈에서 정액, 혈액이 듬성듬성 섞이지 않은 채 있는 정액을 발견했다. 

생리 중이었던 피해자가 성관계 후 움직였다면 정액과 혈액이 뒤섞여 있었을 거란 가설을 세웠다. 위생팩에 아들의 정액을 넣고 주사기로 자신의 혈액을 살살 밀어 넣었더니 6시간 30분 동안 놔둬도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 걷는 상황을 가정해 좌우로 움직이니 완전히 섞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박양 몸에서 채취된 것은 정액과 혈액이 분리돼 있었으니 성관계 당시 기절했거나 저항을 거의 못한 상태라고 보고 성폭행 후 바로 죽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③ 대구 여대생 고속도로 사망 사건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한 여대생이 23t 화물차량에 치여 숨졌다.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신의 위아래 속옷이 없었다. 전날 밤 10시 40분쯤 대학 축제 주막촌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캠퍼스를 떠난 후 연락이 끊긴 계명대 간호학과 1학년 정은희(당시 18세)양이었다.

속옷이 없다는 점, 시신 훼손이 심했다는 점 등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당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사건을 종결했다. 유족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정은희 양 사건'으로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내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돼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딸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생계 수단이었던 채소 장사는 진작에 접었다. 목격자를 찾기 위해 뿌린 전단만 수만 장이 넘었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전신주에 걸었던 플래카드만 수백 장이다. 정 씨는 2013년 5월 검찰에 또 고소장을 냈다.

대구지검 형사 1부(부장 이형택)는 2010년 DNA법(강력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보관하도록 하는 법률)이 제정된 것에 가능성을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과 경찰의 DNA 자료를 뒤져 15년 전 정양 속옷에서 채취한 DNA가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권유하다가 붙잡힌 스리랑카인 A(46)의 DNA와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검찰은 3개월여 동안 수사를 벌여, 15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A 씨 등 스리랑카인 3명이 술에 취한 정양을 고속도로 부근으로 끌고 가 집단 성폭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2015년 A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성폭행 혐의는 정양 속옷에 묻은 DNA가 K 씨 것과 일치해 입증이 충분했지만, 특수 강간죄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1998년 발생한 이 사건의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K 씨와 범인들이 정양의 책과 학생증 등 소지품을 빼앗았다"는 다른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을 확보해 K 씨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2013년 기소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증인으로 나온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소지품 탈취)을 믿을 수 없고, 혐의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2016년 1·2심에서 무죄가 나온 스리랑카인 K(50)씨를 스리랑카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공소시효 문제로 한국에서 처벌이 어렵다면 공소시효가 한국보다 긴 스리랑카에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특수강간죄 공소시효는 20년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양에게 가한 범죄 행위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한국 땅에서는 처벌이 어렵게 됐다. 



#5. 장기미제 사건 해결의 미래


2019년 4월,  경찰은 지문감정 경력이 10년 이상인 감정관 4명을 선발해 9월 30일까지 미제사건 총 1,088건의 미제사건을 지문 재검색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범죄 종류별로는 살인 52건, 강도 44건, 성폭력 53건, 절도 939건에 대한 지문을 재검색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건 발생 당시에는 기술력 부족으로 식별이 힘들었던 조각지문을 구별하거나, 미성년자였던 피의자의 지문 식별에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 결과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면으로의 기술의 발전은 향후 미제사건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기초과학부터 응용기술까지 적극적인 투자가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미제사건 담당 수사관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실적 및 승진제도와 인력의 부족은 해결되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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