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최근 악성 댓글(악플)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의 수가 늘어나고 극단적인 피해로 이어지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악성 댓글에 대한 시각과 현재 국내외 대응,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저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456/clips/115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456/clips/116
악성 댓글의 위험성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는 다수의 시선을 받는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등 공인부터 개인 수준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악성 댓글은 특정 인물을 비방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수준부터 사회적 집단이나 단체에 대한 혐오적인 표현을 하는 것 까지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포털사이트 뉴스 기사에 이용자가 남길 수 있는 댓글에는 익명성과 간편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익명성과 간편성이라는 특성은 많은 이들이 뉴스 기사에 재치 있는 댓글을 남기고 이에 공감하기도 하면서 댓글이 일종의 표현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댓글이라는 문자로 쉽게 비방하고 혐오할 수 있게 하는데도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도 팟캐스트와 브런치 등 개인 콘텐츠를 제작해오면서 댓글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시는 청취자분이나 독자분들이 있어 그만큼 힘이되기도 했지만, 종종 섞여있는 비방이나 근거 없는 사실에 대한 댓글 등을 접할 때면 그동안 받아왔던 긍정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것보다 부정적인 댓글이 기억에 남아 며칠을 고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유명인사도 공인도 아닌 단순히 제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으로 다수 대중의 관심이나 여론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악성 댓글로 고민을 하게 되면서 매일 다수의 시선을 받고 비방과 평가의 도마에 오르는 이들이 겪는 악성 댓글에 대한 공포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악성 댓글 법적 정의와 처벌 현황
악성 댓글로 인한 처벌은 사이버 모욕죄와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다음과 같은 법적 정의를 가지며 처벌합니다.
[형법]
제311조 (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벌칙) ①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청에 다르면 2014년 사이버 모욕죄 및 명예훼손 발생건수가 8,880건이었던 것에 반해 2015년부터 매년 약 1만 5천여 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검거율은 약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이버 모욕죄와 명예훼손의 발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기보다 신고 접수 건수의 증가와 악성 댓글에 대한 경각심과 인식의 변화로 인한 증가로 판단됩니다.
국내외 포털과 언론사의 댓글 운영
세계 최대 검색 포털인 구글 뉴스에는 댓글 기능이 없습니다.
구글은 각종 언론사의 기사를 취합하여 보여주며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여 기사를 읽고 해당 언론사의 방침에 따라 댓글을 운영하는 이른바 '아웃링크(out-link)'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포털이 자체적으로 뉴스 기사 댓글 플랫폼을 운영하지 않고 언론사의 결정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외 언론사들의 댓글 운영 방침은 어떨까요?
일부 언론사에서는 댓글 기능을 활성화 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해외 언론은 댓글창을 애초에 운영하지 않았거나 없애는 추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타임스의 경우 기사마다 달리는 비방과 욕설의 악의적인 댓글을 더 이상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댓글창 운영을 전체 기사의 10%만을 유지하고 독자들의 양질의 의견을 취합하여 보여주는 코너인 '픽스(Picks)'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표 포털인 네이버와 다음도 댓글과 관련된 운영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2018년 드루킹 사건 등 댓글 여론조작 논란 이후 네이버 뉴스 중 정치뉴스의 경우 댓글창을 추가적인 클릭이 필요하도록 따로 운영하고 공감 순으로 댓글을 볼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언론사가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댓글 관리를 언론사에게 맡기겠다는 입장입니다.
다음은 연예기사 댓글에 한하여 2019년 10월부터 댓글창을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17일 발표된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연예뉴스 댓글 폐지 여론이 찬성 85%로 나타나 연예기사에 한정해서라도 포털 뉴스 댓글을 운영하지 않는 것에 긍정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악성 댓글 피해자가 없는 사회
댓글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언어적 괴롭힘이고 혐오이며 폭력입니다.
뉴스 기사에 댓글에 대해 느끼는 저의 기분을 하나의 상징적인 예시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A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자리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복도 자리였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A에 대한 코멘트를 했다.
누구는 본인 맘에 들지 않는 메뉴를 주문한 A를 욕했고, A의 젓가락질을 나무랐고, A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입지 않았다 비난했고, 혼자 밥을 먹는 A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A가 신고 있는 신발이 비싸다고 허영심 많다 평가했다.
여러 코멘트는 끊임없이 반복됐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만큼 코멘트는 늘었고 간간히 긍정적인 이야기도 간간히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을 수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굳이 A의 이어폰을 빼내 옆에서 A에 대한 비방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식당 주인은 자신은 단지 자리를 정해준 것뿐 모든 일은 사람들이 잘못이라 탓했다.
사람들은 지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A는 일일이 그에 답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매일 누군가 나에 대한,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내가 속한 사회적 집단에 대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비방과 혐오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오는 환경에 처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뉴스 기사에 댓글 기능이 꼭 필요할까요? 악성 댓글을 해소하기 위해 댓글 기능만 폐지하면 될까요?
악성 댓글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해결방안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크게 세 가지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악성 댓글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
적절한 수준의 처벌은 잠재적 가해자에게 제재 효과를 가집니다. 최근 악성 댓글은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로 인해 인터넷 초기 시절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피해자의 피해에 대한 응당한 대가이자 악성 댓글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범죄임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10대의 약 50%가, 20대의 30% 정도가 악성 댓글 작성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악성 댓글로 고소를 진행하던 피해자가 가해자의 연령대를 알게 되고 놀랐다는 보도도 종종 그려지곤 합니다. 그러나 특정 상황이나 연령에 따른 관용적인 태도는 결국 악성 댓글이 특정 가해자라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2. 포털사이트의 댓글창 운영 변화
현재 포털 사이트는 댓글창 운영에 있어 각각 나름의 변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2019년 초, 13세 미만 어린이가 등장하는 영상에 대해 댓글창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게시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영상에 댓글 입력이 불가하게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댓글 욕설, 비방, 혐오표현 등에 대한 신고와 필터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덕적인 댓글창 운영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다음 또한 국민의 요구와 사회적 변화, 몇몇 사건들을 겪으면서 악성 댓글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음은 비연예 기사의 댓글과 실시간 검색어 기능의 폐지도 검토 중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댓글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에 비해 부정적으로 활용되고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댓글만이 표현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3. 사이버 공간 활용에 대한 사회적 교육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지켜야 할 도리와 도덕, 윤리와 법에 대해 인지하며 사회화 과정을 겪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를 비방하거나 혐오표현을 한다거나 하는 언어폭력은 오프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나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마주하고 함부로 욕하거나 비방하지 않습니다. 제가 위에 묘사했던 예시와 같은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얼굴을 마주하여 내 신원이 밝혀지고 그 대상을 만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온라인은 익명성과 간편성의 특성을 가집니다. 손에 있는 핸드폰으로, 책상 위의 노트북으로 충분히 누군가에게 언어폭력 가해를 가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의 특성인 익명성과 간편성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죄질이 더욱 심각하며 사이버 공간의 확장성을 고려하면 그 피해 수준도 방대합니다.
이를 궁극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이 온라인 상의 사회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악성 댓글이 향하는 곳에는 어떠한 사람이나 특정한 집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악성 댓글은 오프라인 모욕이나 혐오표현과 다를 바 없으며 전파성을 따지면 더욱 심각한 수준의 범죄임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우리 모두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댓글창을 폐지하는 것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악성 표현의 확산 현상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악성 댓글은 다시 악성의 무엇으로 변화할 수 있고, 사이버 공간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종합적인 사이버 공간 활용에 대한 사회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악성 댓글의 종말
댓글 자체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운 감정은 없지만 종종 댓글이 집단 지성이 해낼 수 있는 일을 해내거나, 표현의 자유가 가져다주는 자율성의 발현, 건강한 토론의 장의 형성, 즐거움과 재치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모습도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댓글창이 악성 댓글의 장이 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상업적으로 훼손되는 모습들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그 누구라도 악성 댓글로 인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댓글창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언젠가 악성 댓글이 종말 한 댓글창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악성 댓글이 미신처럼 존재하는 미래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