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해제가 코앞이지만 여전히 상태는 메롱입니다.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가 생각났다. 이미테이션 게임.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인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앨런튜링이라는 수학자의 이야기. 더 길게 이야기하면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갑자기 이게 왜 떠올랐느냐 하면, 앨런은 사회성이 약간은 결여되어 있는 벽장 속의 인간이라 팀원들과 합을 맞추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앨런은 이해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러다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곧잘 삐그덕거렸다. 그리고 지금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내 혀와 코가 그렇다. 몸에서 삐그덕거리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미각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다. 어제는 겨우 아무 맛도 안 나는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다섯 가지 맛 중에 딱 두 가지만 느껴진다. 쓴맛과 신맛. 그중에도 신맛은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통각같은 수준으로 짜릿할 뿐이고, 항상 쓴맛과 신맛의 베이스에는 짠맛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것은 쓴맛, 신맛 외에는 맛이 안 느껴지니까.
오늘 아침에는 엄마가 직접 재워두고 간 제육볶음을 볶아 먹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제육에서 아무 맛도 안 났다. 엄마는 달달하게 간 하는 것을 좋아해서 분명 달짝하고 약간 알싸할텐데. 쓴 냄새를 제외하고는 아무 냄새도 맛도 나지 않았다. 약간 눈물이 날 것 같다가 그냥 신기해서 몇번 더 주워먹었다. 뭘 먹어도 아무 맛도 안 나니까 이것저것 더 먹어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미각 후각을 잃으면 입맛이 없다던데. 입맛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이것도 쓴 맛이 나네? 이것도 쓴 맛이 나네? 싶을 뿐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아침을 먹고 약을 먹었다. 약은 졸릴 거라고 써있었는데, 졸리지는 않았고 오히려 입속이 조금 말랐다. 어제보다는 목 부음이 나아졌다. 베타딘을 더 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따로 뿌리지는 않았다. 한번 끔찍하게 앓고 나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원래 뭐든 한차례 격하게 지나가고 나면 괜찮아지는 법이라고 배웠는데, 코로나에도 그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약을 먹은 다음에는 한참 늘어졌다. 침대에 붙어서 일으킬 생각을 안 하고 그대로 가만히 누워서 한참을 있었다. 계속 휴대폰을 보다가 가끔은 창 밖을 쳐다봤다. 나가고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휴대폰만 보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세 끼를 다 챙겨 먹었다.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나면 다 낫지 않았어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괜찮았다. 이제 겨우 24시간 남았다. 격리생활. 생각보다 성실하지 못했지만 마무리까지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격리가 끝나고 나면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일상이던 것이 특별한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또 매일의 평범한 일상이 주어지면 불평하지 않고 천천히 둘러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조급해하거나 싫증내지 말고. 매일의 계절이 지나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