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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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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17. 2018

나의 할머니

할머니가 보고 싶은 날.


어릴 때 할머니와 한 방을 썼다.

2층 침대 하나 만으로 가득 차던 공간이었다. 그 작은 방엔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텔레비젼이 있었다.

막 평면 텔레비젼이 나오던 시절, 엄마가 할머니를 위해 큰 맘 먹고 구입한 것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매일 저녁 나란히 그 앞에 앉았다. 할머니가 건네는 누가 사탕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우리가 좋아하던 드라마 <허준>을 보며 쿰쿰한 할머니 곁에 누워 잠이 들곤 했다.


유독 기억에 남는 할머니의 음식은 라면. 매큼하고 짭짤한 맛에 반해 매일같이 하굣길을 재촉해 달렸다.

서둘러 식탁에 앉으면 할머니는 오래된 국그릇 하나를 꺼냈다. 넘치지 않을 정도로 찰랑이게 물을 받아 냄비에 부었고, 곧이어 스프를 탈탈 털어 넣었다. 그래야 물이 빨리 끓는다나. 어쨌든 물이 끓고 나면 면과 건더기 스프를 넣어 꼬들꼬들하게 라면을 익혔다. 마지막으로 달걀 톡-. 국물이 졸아든 탓일까? 할머니의 라면은 언제나 이 나간 국그릇 같은 자리에서 맛있게 넘실댔다. 나는 서둘러 한 젓가락 떠올리기에 바빴다. 할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잠시 살펴 보다가 라면 봉지를 기다랗게 접어 한 바퀴 휙 감았다. 자랑스레 쓱- 웃어 보이며.  쓰레기는 가장 작은 크기로 접어 버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자꾸만 작아지는데 어린 것들은 야속하게도 부쩍 자랐다. 나와 동생의 덩치가 집을 가득 채웠고, 맞벌이하는 딸 내 부부를 대신해 우리를 돌보던 할머니는 우리집 가까운 곳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내 키는 어느새 할머니보다 두 뼘은 길게 자랐다. 어른이 됐고, 대학을 졸업해 일도 시작했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우린 종종 나들이를 다녔다. 할머니는 매번 일찍이 나와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운전이 길어지는데도 절대 잠 한 숨 들지 않았던 할머니. 할머니는 가만히 창밖 구경을 하다가 매번 이렇게 말했다. "조그맣던 것이 이리도 커서 운전을 잘한다"고. 그리고는 만원 한 장과 사탕 몇 개를 손에 쥐어줬다.


어느새 내 나이 서른, 할머니는 아흔의 노인이 된 2018년 여름, 할머니는 아주 갑자기- 너무나 갑자기 내 곁을 떠났다.

당시 일본 여행 중이던 나는 늦은 밤 그 소식을 접했다.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혹여나 피해가 갈까- 밤새 눈물을 삼키고, 이른 아침 할머니에게로 갔다. 지난 밤, 할머니에게 심근경색이 왔다고 했다. 의사는 수 초 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했다지만 혼자 살던 우리 할머니는 그 짧은 시간에도 참 외로웠을 터였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오던 길, 차 안에서 할머니가 준 사탕 두개를 발견했다. 언제 적 사탕인지 포장지가 눌어 붙어 찐득했다. 며칠 내 까칠해진 입을 다시다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사탕 하나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먹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준 마지막 사탕을 먹고 할머니의 흔적이 사라질까 무서웠다. 빤히 바라 보다가 다시 깊숙한 곳에 넣어뒀다.


할머니가 떠나고 며칠 동안 하늘이 참 예뻤다. 함께였더라면 할머니는 내 뒷자리에서 가만히 하늘을 보고 계셨겠지.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거울로 슬며시 보곤 했었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나중에 더 잘해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 그토록 오만했을까. 할머니가 좋아하던 서울의 어여쁜 모습을 그냥, 그냥 내 눈에 오래토록 담을 뿐이었다.


우리 할머니, 하늘 가는 길엔 손녀랑 드라이브하던 때 처럼 시원한 바람- 따뜻한 구름들 마음껏 느끼면서 우리 추억 고이 담아 가져갔으면. 할머니에게 유난히 곰살맞던 우리 엄마가 더 많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오늘처럼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던 동네 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할머니의 구부정한 어깨와, 할머니의 거친 목소리가 생각나 그리움이 깊어진다.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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